
내가 갖고 있는 휴대폰에는 카메라 기능이 없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런 휴대폰을 갖고 있는 나를 신기한 눈초리로 본다. 휴대폰의 그 복잡한 기능도 다 사용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카메라 기능까지 있으면 뭐 하겠는가.
생각 같으면 전화를 걸고 받는 일, 문자 메시지, 주소록, 알람 이렇게 네 댓가지만 있으면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것 말고는 쓸 일도 없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 놓고는 선택의 여지없이 구입을 강요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기계에 다양한 기능을 복합시키는 것을 기술력의 승리로 보았다. 이를테면 휴대전화에 카메라기능, 전자사전기능, 게임, MP3 플레이어 심지어 DMB라는 이동방송까지 집어넣었다.
그 뿐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TV의 채널을 돌리고, 전등을 켜고 끄고, 밥솥이나 세탁기까지 돌리는 그야말로 놀라운 시대다. 이런 제품을 일컬어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하는데 본래 이 뜻은 수학에서의 수렴(收斂) 혹은 한 점으로 모이는 집합성 등의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제는 디버전스(divergence) 제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고 하니 세상은 역시 돌고 도는 사이클의 관계인가 싶다.
디버전스는 잡다한 부가기능을 없애고 기능을 단순화시킨 특화제품으로 컨버전스가 수렴을 나타낸다면 디버전스는 발산(發散)을 의미한다. 용어상으로는 복합과 분화의 개념이다.
기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뇌에 찬 고민하는 인간상의 매력에서 이제는 좀더 유머러스하고 약간은 모자라는 듯한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다. 2005년도의 TV를 뜨겁게 달구었던 「순이 신드롬」이 바로 그런 경우다.
30대 여성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내 이름은 삼순이’에서의 삼순은 외모와 학력지상주의 사회에서 어울리지 않도록 뚱뚱한 노처녀라는 컨셉으로 당당함을 보여 주었다면, 40대 아줌마들이 열광했던 ‘장밋빛 인생’에서의 ‘맹순이’는 살림하랴, 돈 아끼랴 머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억척주부로 불우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슴 후련함을 느꼈고,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보여준 20대 여성의 모습인 극중 금순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 설상가상으로 일찍 결혼했으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꿋꿋이 아이를 키우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부였다.
이 세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생기고, 똑똑하고, 돈 많고, 많이 배운 인물이 아니라 보통의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파마머리의 이웃집 아줌마이기에 더 정감을 느꼈다.
작년 8월부터 금년 3월 말까지 방영되었던 개그콘서트의 골목대장 마빡이는 참으로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몸으로 웃기는 개그)다.
도대체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내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대사다운 대사도 없이 마빡이, 갈빡이, 얼빡이, 대빡이로 이름 지어진 개그맨 몇 사람이 나와서 박자에 맞춰 이마를 치다가 지쳐 쓰러지면 그만이다. 허무와 자학으로 빚어내는 불쌍한 코너였다.
그런 개그가 먹혀들 것이라고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조차 몰랐을 게다. 두어 번 해 보다가 반응이 별로면 그만 둘 거라 여겼을 게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국을 마빡이 열풍으로 후끈 닳아 오르게 만들었다.
마빡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디버전스 제품이 각광을 받고, 잘나지도 않고,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여자 「순이」가 모두 시청률 톱 10에 들 수 있었는지를 눈치 챈다면 세상 살기는 훨씬 수월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