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고양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지난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4300여 만원 모금

"일본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 여성들의 한 맺힌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권과 평화가 넘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거제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한복을 입은 15세 안팎의 소녀. 흩날리는 치마에도 맨발로 서 있는 이 소녀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소녀의 손 안에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파랑새가 평온한 모습으로 자리했다.
소녀 옆에는 빈 의자가 놓였다. 소녀의 모습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림자의 모습은 다소 이상하다. 젊은 소녀의 형태가 아닌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 검은 그림자 한 가운데 하얀색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지난 17일 거제문화예술회관 별관동 앞 소공원에서 열렸다.
시민·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경과보고에 이어 생존자 기념사, 희망글 낭독, 감사패 전달, 제막, 살풀이, 헌시낭독, 비문낭독, 작가소개 및 작품설명, 합창,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거제시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비 건립위원회 박명옥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자리는 이 땅에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다짐하는 동시에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자리"라면서 "추모상 건립에 도움을 준 시민과 단체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송도자 대표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여성의 존엄과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유명을 달리하신 거제 지역의 두순, 선이 할머니가 오늘은 하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면서 "오늘을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명예회복과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자는 서약의 자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날 아흔 일곱번째 생일을 맞은 김복득(통영시) 할머니는 "너무 기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라고 감격해 했다. 또 생존 피해자들을 대표해 서울에서 내려 온 김복동(89) 할머니는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꼭 일본의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고, 길원옥(87) 할머니는 "여러분들이 후손들에게 잘 전달해서 앞으로는 우리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막식은 하얀 천으로 덮혀 있던 소녀상이 생존 할머니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면서 절정을 맞았다. 제막식 직 후 김복득 할머니는 소녀상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혀 주위를 숙연케했다.
지난해 7월 4000만원을 목표로 시작된 소녀상 건립 모금운동은 6개월 동안 모두 4298만890원이 모였다. 생존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100만원을 기부하는 등 각계각층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개인 300여 명 외에 지역 초·중·고교와 시민단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30여개 기관·단체·기업이 동참했고 거제시는 1000만원을 지원했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과 사과없이 역사왜곡과 은폐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만행을 꾸짖으며 불어오는 바람에도 파랑새를 보호하고 있는 이미지로 제작됐다.
소녀상은 청동과 화강암, 오석, 대리석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180(가로)X160(세로)X160(높이)㎝이다. 소녀상 옆 빈 의자는 일본정부의 그릇됨을 고치지 못한 채 억울하게 먼저 떠나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쓸쓸한 빈자리를 표현했다.
또 할머니 형태의 그림자는 사과나 반성없이 지나온 시절 할머니의 원망과 한이 어린 시간을 나타냈고, '환생'을 뜻하는 그림자 속 나비는 이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부디 나비로라도 다시 살아나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아야한다는 의미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