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막·공
나·만·막·공
  • 거제신문
  • 승인 201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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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쯤 전일까, TV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가 꼭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주는 강연을 들었는데 간단히 정리하면 '나만막공', 참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1 나 - 나가라
되도록 나가야 한다. 해가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와야 한다. 실내공기와 외부공기를 비교했을 때 실내가 50배 정도 더 좋지 않다고 한다. 나가면 얼마나 좋은가. 햇빛이 있고 맑은 공기가 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지천이다.

해가 떠도 나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일본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오타쿠'라는 족들이 있어 큰 문제이고 우리나라에도 '방콕'이나 '방글라데시' 하는 족들 또는 피씨방에 틀어박혀 사는 족들은 큰 문제거리이다.

해가 져도 들어오지 않아도 문제이다.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건강을 해치고 돈을 낭비하고 심하면 노숙자가 되는 것이다. 해가 지면 일찍 들어와서 집에서 일찍 잠을 잘 일이다.


2 만 - 만나라
사람은 만나야 한다. 몇년 전 한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그가 저녁모임이 있는데 나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떤 훌륭한 사람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니 기쁜 마음으로 나가봐."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 만남으로 인해 기쁨이 있고 배움이 있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은 만나서 좋고 미운 사람도 최소한 반면교사(反面敎師·아래 *참조)는 되리니,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나쁜 만남이란 없는 것, 인간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보와 경험의 보고가 아닌가. 그렇게 만남을 통해 교류하면서 영감과 교훈을 얻으리라.


3 막 - 막아라 
무엇을 막을까? 질병을 막아야 한다. 즉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건강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첫째는 마음의 안정 즉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보통 욕심에서 온다. 나의 욕심, 나의 기대, 내가 낸데… 하는 자만이 고통의 원인이다. 부처는 이를 '탐진치'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끊임없이 반성하면 마음의 평화가 온다. 둘째는 영양이다. 규칙적으로 적당한 음식을 먹는다. 육식을 삼가고 채식을 즐긴다. 일본의 관상가며 철학자인 소세키는 음식을 절제함의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했다.

셋째는 운동이다.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직장 안에 살인자가 있다고 한다. 바로 의자! 하루에 4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운동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무엇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이 가장 좋다. 적당한 운동이 없다면 걷기를 하면 된다. 걸어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 새로 생긴 가게, 바람소리…. 내 발로 걸어 다니면 얼마나 좋은가? 계단을 만나면 '와우 내 건강' 이라고 외쳐보라. 

나는 원래 테니스광이어서 일년 중 날씨가 허락하지 않은 때를 빼고는 항상 테니스장에 갔는데 요즈음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탁구장에 간다. 탁구도 아주 좋은 운동, 순발력을 길러주고 전천후 운동이며 즐거운 웃음을 선사한다.


4 공 - 공부하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만이 아니라 공부도 길다. 무슨 공부를 할까? 자신의 마음이 가는 즉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된다. 공부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유튜브를 보라,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동물의 세계, 불교 이야기를 영어로 듣기·역사·철학 등등 이 모든 게 공짜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책을 손에 들면 보물보다 기쁘지 아니한가.

이 모든 이야기가 비단 중년이나 노인만을 위한 건 아니다. 우리 모두 한 번 생각해 보고 노력해 보자.  

* 반면교사(反面敎師) :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비슷한 뜻을 가지나, 그보다 의미가 더욱 직설적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했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요즘은 보통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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