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와 장성택
사마의와 장성택
  • 거제신문
  • 승인 2014.0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논설위원

삼국지(三國志)를 흥미진진하게 읽게 만드는 것은 제갈량의 기막힌 전략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촉나라 군사(軍師)라면 조조에게는 사마의(司馬懿 179~251)가 있다.

자는 중달(仲達)이며 지금의 하남성 출신으로 뛰어난 안목과 식견으로 조조를 비롯하여 4대 40년간 조씨 집안에 충성한 책략가였다. 그러나 사마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쫒다'라는 굴욕적인 고사의 주인공이며, 언제나 제갈량의 꾀에 속아 번번이 당하기만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사마의는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기회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참을 줄 아는 탁월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예순 때 고향으로 돌아오자 마을사람들이 그의 귀향을 열렬한 환영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고성귀로 대죄무양(告成歸老 待罪舞陽 위업을 이루고 고향에 돌아가 처벌을 기다린다)'라는 시로 권력에 뜻이 없음을 공표한다. 이렇게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처세술 덕택에 조조의 위(魏)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주인공이 된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킬 때만 해도 위나라의 권력은 조상(曺爽)이 쥐고 있었다. 조상은 늘 사마의를 감시했다. 사마의는 중병에 걸린 것처럼 행세하며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죽을 먹을 때도 가슴에 흘리며 노망한 노인처럼 행세했다. 사마의가 자신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느낀 조상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자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받게 된다.

이때를 기다려 사마의는 전광석화처럼 조상을 습격하여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책이나 읽던 평범한 서생에 불과했던 사마의가 새 왕조의 선왕(宣王)이 되었으니 삼국지의 진정한 승리자는 사마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장성택은 그동안 3대에 걸쳐 충성한 것이나 백두혈통이 아니면서도 권력의 2인자에 오른 것이 사마의와 흡사하지만 실패한 정치가가 되고 말았다.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