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의 역발상
눈(雪)의 역발상
  • 거제신문
  • 승인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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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논설위원

일본 아이모리현은 본토 섬의 최북단에 위치한 사과의 주산지다. 수확을 앞둔 시기에 지붕이 날아가고 기차가 탈선할 수 있는 수준의 초속 40m라는 엄청난 태풍이 불어 사과의 90%가 낙과하자 농민들은 모두 실의에 빠졌다.

그때 그들은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에 주목했다. 떨어진 사과보다는 떨어지지 않은 사과에 기막힌 스토리텔링를 입힌 것이다. 곧, '90%나 떨어졌다' 가 아니라 '10%는 떨어지지 않았다'로 뒤집어 놓고 보면 떨어지지 않는 사과는 '합격사과'가 되어 1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보졸레 지역은 고급와인에 적합한 포도 품종을 키울 수 없는 토양이다. 따라서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은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서민을 위한 저가 와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보졸레 와인은 장기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을 지금 아니면 마실 수 없다는 '희소성의 가치'를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둔 예다. 보졸레 누보는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새벽 0시 이전에는 팔 수도 살 수도 없다. 이날 이후 와인을 빨리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행기로 전 세계에 실어 나른다.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사람들이 온천이나 사우나에서도 읽을 수 있도록 물에 젖지 않는 비닐 소재의 문고판 책을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 냉장고 속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이 김치라는 데 착안하여 만든 김치냉장고, 동토의 딸 러시아에 얼지 않는 음식보관을 위해 냉장고를 팔고, 여자속옷 광고 모델로 콜라병 같은 여자 연예인을 내세워 탐나는 볼륨감으로 유혹하기 보다는 남자모델을 등장시키는 것도 모두 역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눈(雪)이라면 강원도 사람들에게는 몸서리치는 일이다. 올해는 103년 만의 기록적 폭설로 피해액만 무려 1조 2천억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강원도가 이번엔 역설적으로 눈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나섰다. 'Go East! 가자 동해안으로'를 슬로건으로 바다와 눈이 만들어 내는 이국적인 풍광을 진저리나는 눈에서 겨울 낭만으로 바꾸어 놓고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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