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고 선진국 중의 선진국인 영국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엄한 규율을 적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우리나라의 학교교칙은 교칙도 아닐 정도로 엄격하고 예외가 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모든 교실의 앞쪽에는 학생들이 지켜야할 규율이 코팅돼 붙어 있고 학생들은 자의든 타의든 늘 교칙을 보면서 생활한다. 심지어 학교장은 그 학교의 규칙을 자랑스럽게 얘기했고 어떤 행동을 했을 때는 어떤 벌을 받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영국의 학교장에게 물어 보았다.
"그럼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들이 반발하지는 않는가?"
이 말에 교장은 정색하며 말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벌을 받는 일에 대해 학부모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녀를 교육해 달라고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교육할 뿐이다. 벌을 주는 것도 일종의 교육이다."
이 말에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체벌 문제로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는 없는가?"
"내 교직생활 3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학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영국의 교장은 단호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거제도에서 만난 어느 학부모가 떠올랐다. 그의 아이가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었고, 학교는 교칙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5일간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자 아이의 학부모가 득달같이 학교로 달려와서 하는 말이 "우리 애가 부정행위를 한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부정행위를 하게 만든 교사는 직무유기 아닌가? 직무유기한 교사를 교육청에 고발하겠다."
이 가관인 논리 앞에 기가 막혔다. 도둑을 잡아 경찰서에 넘겼더니 집을 잘 못 지킨 죄목으로 주인을 고발하겠다는 것과 같다. 자식을 보호하려는 부모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런 보호가 자식을 망치고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집에서 보는 아이와 학교에서 보는 아이는 다를 수 있다. 부모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객관적인 시야를 가진 교사가 더 정확하게 아이를 판단 할 수 있다.
그리고 제자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교사는 어디에도 없다. 교사와 학부모는 적이 아니라 동지다. 한 아이를 놓고 그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가진 재능에 가장 적합한 길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할지 염려하는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부정행위라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교사를 공격하는 참담한 학부형을 보면서 나는 교직에 회의를 느꼈다면 너무 과한 것인가.
영국에서는 교사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대드는 학생이 없었다. 교사의 말에 철저하게 '예스'로 응답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교사 입장에서 영국의 교사들이 부러웠다. 이는 교칙이 엄격해서 감히 교사에게 대들 엄두를 못 낸다.
교칙에는 누구도 예외는 없고 영국 여왕이 찾아와도 번복되는 일은 없다했다. 내가 그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복도에 자기 책상을 가지고 나와 교장실 앞에서 따로 공부하는 벌을 받는 아이들이 보였다.
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화민족이고 세계적인 IT 강국이면서 아직도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난리를 치는 교육 후진국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통할 수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교육 개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제 새 학기다. 부디 올해는 학교에 자녀의 체벌 문제로 찾아와 난리치는 학부모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