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호미
나이든 호미
  • 거제신문
  • 승인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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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

전숙 시인
《시와 사람 》시 등단,
《원탁시》 동인,
《문장21》 책임편집위원

나이든 호미가 힘들어 보여 젊은 호미를 샀다.
김을 매는데,
젊은 호미는 다짜고짜 풀숲에 달려들더니
날카로운 손톱을 바짝 세우고
풀뿌리를 댕강댕강 막무가내로 끊어 버렸다.
날이 밝자 글쎄, 잘려진 뿌리에서 새움이 쏘옥
혓바닥을 내미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쉬라고 두엄자리에 얹어 둔
나이든 호미를 다시 집어 들었다.
호미는 오랜 노동에 뭉툭해진 손톱으로
뿌리에게 무어라 어르고 달래는 것 같았다.
실뿌리 한 올까지 호미에게 내어준 바랭이는
쌀강아지 혀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햇볕에 순해진 눈물을 말렸다
나이든 호미는 잔뿌리에 달라붙은
설움 같은 흙덩이를 가만가만 털어 주었다.

●시읽기: 시집 『나이든 호미』에 실린 시이다. 시인은 날이 무뎌진 낡은 호미와 날카로운 새 호미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시인의 시작노트를 그대로 읽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나이든 호미란 오랜 동안 땅을 파면서, 처음의 날카로웠던 날이 뭉툭하게 닳고 덕지덕지 녹이 슨 볼품없는 낡은 세월입니다. 나는 어느 날 나이든 호미가 너무 낡아서 새 호미를 샀습니다. 새 호미로 밭일을 하는데 젊은 호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풀뿌리든 고구마줄기든 막무가내로 끊어 버렸습니다. 젊은 지식의 날카로움이 얼마나 빠르게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는가를 목격하고서야 나는 나이든 호미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눈과 귀가 낡아서 무뎌진 오감의 반응으로 한없이 느려진 나이든 호미는 ‘쯧쯧’ 혀를 차며 허기진 가슴들을 달래 주었습니다. 바로 그 뭉툭한 덕성이 바람과 햇빛과의 오랜 우정 끝에야 비로소 우러나오는 묵은 장맛 같은 지혜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독자가 이 시를 통해 무딤과 날카로움을 음미해 보고, 깨달음을 하나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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