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수필>끊었어요
<초대수필>끊었어요
  • 거제신문
  • 승인 2007.07.12
  • 호수 1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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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연이 날아오른다. 꼬리가 세 개 달린 방패연은 하늘을 향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있다. 내 영혼도 붉게 물들며 설렌다.

그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실이 끊어지며 연 은 곤두박질하고 있다. 극히 짧은 찰라 이었지만 내 인생의 결별과도 같은 순간 이었다.  망연히 사라지는 연을  따라 나의 소망이, 꿈이 사라지고 있었다.  보이던 얼굴이 안 보인다.

“애들아, 인수는 오늘 왜 안 왔지?”
“선생님, 인수 학원 끊었어요.”

아이들은 학원을 그만 다니는 것을 ‘끊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섬뜩하다. 가위로 끊듯이, 칼로 자르듯이, 어떻게 사람 사이를 끊는다고 할까….

학원을 오래도록 다니기는 힘들다. 어느 시기가 되면 그만 두게 마련이다. 예전의 학부형들은 그만 두는 게 미안한 듯 죄송해 하며 ‘이제 그만 다니고 싶대요’ 라고 말하거나 ‘좀 쉬다가 다시 올게요’ 라고 부드럽게 표현을 했는데.

요즘은 그만둬도 사전에 연락을 해주는 이는 드물다. 미리 말하면 행여 그만 둘 아이라고 소홀히 대할 가 봐 염려가 되서 그러는지, 그만두는 날까지 입 꼭 다물고 있다가  당일 갑작스레 통보를 한다.

갑자기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미리 알려주면 챙겨줄 것도 있고, 그동안 배우며 참고 될 이야기도 해 줄 수 있으련만.

그래도 전화로 연락이라도 하는 분은 양호한 편이다. 아예 인사조차 없다. 결석을 해서 궁금하여 전화를 하면 아이는‘엄마가 끊으래요’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럴 때마다 끊으라는 말은 나에게 절벽과 같은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손 끊었다, 발 끊었다는 것은 이제 두 번 다시 안 만난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도 한동안 자식을 가르친 스승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무 자르듯이 그만 둔다고 하다니….

이 계절이 삭막하게 느껴지는 건 ‘끊으래요.’ 라는 말 때문이다. 그 말은 그동안의 시간을 다 잘라 버린다. 갑자기 생각도 추억도 힘없이 끊어지며, 난 망연히 결별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나눗셈이 안 되어 오고가는 차 안에서 까지 열심히 구구단을 외우게 하던 추억도 사라지고, 지나치는 간판을 가리키며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카센터의 CAR가 자동차야’ ‘너희들 좋아하는 스카이 콩콩의 스카이가 하늘이란 뜻이란다, 너희들이 하늘보고 콩콩 뛴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또 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까운 바다로 야외 스케치를 나가면 숨통이 트인 듯이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등대에 가서 파란 하늘 아래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던 즐거운 장면들도 순식간에 아이들이 말하는 깔표(X)로 지워진다.

 그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원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학원을 바꿀 때마다 겪는 불쾌한 장면이다.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단다. ‘그래, 알았다. 이제 오지마라’라고 아이들에게 똑같이 되받아쳐 준다고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단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무엇을 배우던 그만 둘 때는 선생님께 미리 알리고 ‘그동안 감사합니다’라고 꼭 인사를 하는 것이 예쁜 모습이라고.

그렇지만 그렇게 따르는 아이는 드물었다. 얼마 전에도 느닷없이 그만둔다는 전화를 받았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만 두는 거야 ’라고 했지만 저도 미안한지 계면쩍어 아무 말도 안한다.

‘그래, 항상 그렇지 뭐’ 하고 미련을 버리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아이들에게 학원 선생님은 돈 내고 배울 때만 스승이지 그만두면 타인일 따름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라는 인간관계, 나아가서 친구와의 우정도, 장차 부부의 인연도 싫으면 아무 때라도 끊어 버리면 된다는 간단하고도 편리한 생각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 하루라도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

삼십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제적인 도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내 인생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였다.

언제 어디서나 일거수일투족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나 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게 만든 고마운 스승 역할을 한 샘이다.

그들은 매일 미사를 드리며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도드리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까.

스승에 대한 존경심 그것이 배움의 첫 걸음이 아닐까. ‘인격 없이 지식 만 요구하는 세대’ 운운하는 나는 고리타분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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