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 그들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들이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복음을 들었다 할지라도 아직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미 복음을 듣고 수용한 사람들, 이미 잘 믿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미 믿는 사람들도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믿는 사람들이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
그 이유는 복음을 다시 들어야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믿는 사람도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릴 수 있다. 구원받은 그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사람이 사래 들린 것과 사랑에 빠진 것은 숨길 수 없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으면 입이 근질근질 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싶고 구원받은 것을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계속하다 보면 처음 믿을 때의 그 감격, 그 흥분을 잃어버리기 쉽다.
예수 믿는 것이 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주일마다 교회는 가지만, 마음에 열심도 열정도 없다. 기쁨도 뜨거움도 없다. 그렇다면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복음을 다시 듣고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로마에 있는 교회가 바로 그러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수 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신앙은 잠들어 버렸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들을 향해서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하면서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그래서 복음을 다시 들을 때에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이렇게 찬송했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찬205장)
처음처럼
처음 예수님을 알았을 때처럼,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처럼, 처음 세례를 받을 때처럼, 처음 봉직을 맡았을 때의 설렘과 다짐이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져 느슨해졌을 때 바울의 권면을 되새겨야 한다. 복음을 다시 듣고 묵상하며 구원의 능력과 구원의 감격,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고난주간·부활절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