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짜기에 흰 구름 펴오르고 언제나 푸른 소나무가 하늘을 받쳐 이고 있을 언덕 아래 고향집 문 두드리면 세상에 찌든 마음 맑게 씻길 것 같은 그런 고향, 골짜기마다 서려있는 옛 이야기들을 기억하면 꼭 그만한 친구들이 불쑥 나타나 반갑다고 헹가래라도 받을 것 같은, 그리 늙지 않은 어머니가 강된장을 끓여 놓으시고 두 손 벌려 맞이해 줄 것 같은 참 편하기 그지없어야 할 그런 곳이 고향이리라.
하지만, 요즘 내가 고향에 다니러 가는 길은 늘 어쭙잖다. 남의 집에 돈 빌리러 간 것처럼 쭈뼛거리기 일쑤다. 늘 있어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내가 뛰놀던 골목과 버들잎 가지 길게 휘날리던 강가에는 낯 선 사람들의 자동차와 전원주택이 기세등등 하게 들어섰다.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가 사라지고 생긴 저수지 둑방에 앉아 고향이 어떤 곳이었나를 생각한다. 이른 아침 냇가 주변에는 미처 피어오르지 못한 물안개가 떼로 몰려다니고 있었고, 가끔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피라미의 장난질에 묽게 뭉쳤던 물안개가 엷게 흩어질 때면 산벚꽃 하얀 꽃잎이 물 따라 줄지어 흘러내리는 모습이 즐거웠다.
흔들리는 버들잎 여린 가지에 바람이 춤을 추고 장다리 꽃잎에 앉았던 하얀 나비의 힘찬 날개짓을 보며 사랑을 시작하곤 했다. 동네 골목마다 갈갬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좁은 길마다 서로 알아보며 인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그러하던 고향의 모습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몇 남은 어르신들은 허물어져 가는 돌담처럼 등이 굽어 앙상하다. 많은 논과 밭을 가라앉히고 들어앉은 저수지는 볼 만한 경치를 자아내지만, 저 물에 잠긴 논과 밭, 자맥질하고 놀던 깽변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저 논과 밭을 물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풍요를 누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제일 먼저 들어 선 것은 카페와 펜션이고 모텔이다. 전원주택을 분양한답시고 어릴 적 뛰어 놀던 뒷산을 마구 갉아 흔적도 없애 버렸고 집집마다 'CCTV가동' '출입금지' 등의 빨간 안내판이 붙어 있다. '구름다리'라는 펜션 이름과 봄 하늘을 무심한 듯 흘러가는 구름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방인 아닌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싶다. 나서 자란 곳 보다 타향살이가 더 오랜 세월이고 보면 요즘같이 빠르고 늘 바쁜 세상에 고향이 따로 있을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디십니까?" 묻는다. 동향이 확인되면 형제라도 만난 듯 반가워 한다. 그리고는 마음의 문을 열어 버린다.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이동이 수월해진 세상이다 보니 고향에서 태어나서 줄곧 살고 있는 사람, 온전한 토착민이 몇이나 될까 싶다.
지금 살고있는 도시에서도 나는 역시 이방인이며, 토착민 그들도 내게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고향이라는 것은 내가 정할 수 없었지만 처음 마음을 기르고 가꾸었던 정서가 나이가 든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삶의 원형 같은 것이지 발붙이고 반드시 살아야 할 곳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또 이방인이라 하여 그리 서러울 것도 아니다. 내 고향에서 집 짓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방인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며 토착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고, 나 또한 몸담고 있는 이 도시가 내 고향인 셈이고 토착민이다. 모두는 모두의 이방인이고 모두의 고향 사람이라 믿으며 살고 싶다.
여기도 내 고향, 저 땅도 내 고향, 좁은 대한민국의 땅 덩어리에 발 디디고 서면 모두의 고향 아닌 곳이 없다. 모두의 고향으로 이뤄진 타향에서 우리는 별 수 없이 숨 고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안아주고 위로받으며 사는 도시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당당한 고향을 다시 이룰 일이다.
점점 살아나는 푸른빛과 산 이곳저곳 흰 버짐처럼 번지는 아름다운 꽃들에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찬 4월, 이방인과 토착민의 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당신이 스스로 정한 고향은 어디신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