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희
시조시인 1975년 《시조문학》 등단. 진주문인협회장 역임.
|
시장길 모퉁이에 젊은 신기료장수
아내가 집 떠난 후 구겨진 모습이더니
어제는 그마저 떠나 가게 안이 비었습니다.
고단한 생을 누벼 망가진 신발들을
그 무슨 소명이듯 새신으로 꾸미더니
소박한 한 자락 꿈도 구름 속에 묻었습니다.
가난이 비수되어 난도질한 가슴앓이
구겨진 그 마음은 깁지 왜 못했나요
삭풍에 부러진 가지 흔적조차 없습니다.
·시 읽기: 계간 《문장21》 7호(2009, 겨울)에 실린 시조이다. 김정희 시인은 한국시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문학부문), 경남시조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등 수상 경력만 보더라도 꽤 이름난 시인이다. 이 시조는 제4시조시집 『풀꽃 은유』(1994)에도 수록되 있다. 1998년도 IMF 경제 위기 이전에 발표한 시조로서 창작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평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연에서 그가 세상을 등졌음을 암시한다. 헌 구두나 신을 깁는 일을 업으로 하는 젊은 신기료장수의 아내가 집을 떠난 후, 그가 구겨진 모습으로 망가지더니, 어제는 그마저 떠나가 버렸다. 그래서 가게 안이 비어 있다. 2연에서 그 자신의 고단한 삶과 손님들이 맡긴 망가진 신발들을 소명감을 갖고 새신으로 꾸미더니, 소시민의 소박한 한 자락의 꿈마저도 구름 속에 묻어 놓고 떠나 버렸다. 3연에서 화자는 이미 망자인 신기료장수에게 남의 헌 구두나 신발은 잘 기워 새것으로 만들면서 왜 자신의 구겨진 마음과 찢어진 가슴을 기워 새것으로 만들지 못했는지 반문한다. 그리고 종장에서 "삭풍에 부러진 가지 흔적조차 없습니다."라고, 인생의 공허함을 말하며 그가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님을 밝힌다. 세상은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불공평하다는 것을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헤진 남의 구두를 새것으로 만드는 손재주처럼 그의 헤진 마음을 깁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 버린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시인은 남을 위한 헌신적 삶도 값진 것이지만, 무엇보다 망가져 가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삶의 노력이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
저작권자 © 거제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