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적인 의미로는 ‘사실무근의 내용들을 만들고 전파하여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전략’을 말하는데 우리의 정치와 선거문화에서 흑색선전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실례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아들의 병역비리를 은폐했다는 의혹 등 9가지 의혹에 시달렸다. 대선 3년 후 각종 의혹은 ‘근거 없다’는 최종심 결과가 나왔지만, 유언비어로 이득을 얻은 측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고, 선거 결과도 바뀌지 않았다.
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연회비 1억원 피부관리실 출입설’로 치명상을 입고 낙선했었는데 선거 후 3개월 뒤 ‘나후보가 피부과에 쓴 돈은 550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미 선거는 끝난 후였다.
이처럼 선거철의 흑색선전은 시기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항상 선거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더구나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는 요즈음의 선거에서 흑색선전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선거의 승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흑색선전'은 선거철 후보자들의 '마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사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흑색선전’을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상대 후보의 약점 혹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해 경쟁자를 '녹다운' 시킬 만큼 강력한 효과를 내지만 의혹을 제기한 쪽이 '음해 공작 세력'으로 몰리게 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행 우리의 정치문화와 현행 선거법제 하에서는 이처럼 역풍을 맞는 사례보다는 효과를 보는 경우의 수가 더 많고 현실적으로 흑색선전에 대해 딱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의 흑색선전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도 그다지 선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미국의 민주당 듀카키스 후보가 공화당의 부시측 흑색선전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패배한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흑색선전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면 결국 이미지 싸움인 선거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확대 재생산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부정적 이미지만 오히려 강화되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상대의 흑색 선전에 유사한 맞대응을 하는 것도 당장은 맞불작전으로 소위 ‘물타기’가 가능하겠지만 유권자들의 정치판 전체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을 초래하게 되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러한 흑색선전과 맞대응이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행해지게 되면 선거가 끝난 후 양측의 후유증은 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의 심각한 수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몇 해 전 정치권에서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속칭 ‘나경원법’을 만들어 흑색선전을 차단해 보려고 한 움직임이 있기도 했었지만 여야간 이견과 회기종료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과거 우리의 선거문화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손 꼽혔던 ‘선거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밥을 사는 풍토’는 200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밥을 사는 사람도, 얻어 먹는 사람도 ‘50배 과태료’를 무는 조항이 실시‘되어 양쪽 모두를 엄하게 처벌하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흑색선전에 대해서도 이러한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벌금형 자체를 없애 유죄가 확정되면 무조건 실형을 살게 한다든지, 허위 사실의 근원지 역할을 한 언론매체에 대해선 징벌적 벌금을 부과해 회사가 망하도록 한다거나 사이트를 강제 폐쇄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곧 거제시민들은 향후 4년간 25만 거제시민의 살림을 책임질 수장을 뽑아야 한다. 이러한 때에 새누리당 거제시장 예비후보자들간의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흑색선전’ 논란은 거제시민들이 ‘흑색선전’을 행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거제 시민의식의 척도’로 작용할 것이다.
거제시민의 명예를 위해 어느 때보다 거제시민들의 사려 깊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