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읽는 시장님
시(詩) 읽는 시장님
  • 거제신문
  • 승인 201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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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단 한마디로/천년 덕을 누리고//단 한마디로/만년 덕을 허무는/벌겋게 독버섯으로/숨어 꿈틀거리는/악덕//하늘의 별을 모두 뭉친 우주 하나를 누구나 하나씩 모시고 있으니'

폭언·독설을 뱉어온 혀에 대한 곡진한 참회이자 말의 빛과 그늘을 생각하게 하는 신달자 시인의 '「혀1」 전문이다. 마음에 와 닿는 시다.

말이 안 통할 때처럼 답답한 경우도 없다. 외국여행을 할 때는 그나마 손짓 발짓을 해가며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하다. 그런데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소통이 거부되는 마음의 벽에 부딪혀야 할 때의 답답함이라니. 말이 주는 상처가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아프고 오래 간다.

반대로 말 한마디가 천년 덕을 누린다고 하는 것처럼 좋은 말은 큰 힘이 되고 살아 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에서처럼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함을 알려준다. 그럼 우리는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이 푸른 하늘에 부푼 풍선처럼 떠다니는 착한 환경 속에 살고 있을까?

최근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대형 사건사고에 혼란스럽고, 그에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뱉어내는 말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아예 입을 닫았다. 이제는 지쳐 어떤 말이든 곧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바른 정치는 바른 소리에서 나온다'는 훈민정음 창제의 속뜻을 생각할 때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바른 소리로 바른 정치를 펴야 할 정치인들의 말이 막말 수준이니 국민에게 정치의 언덕은 언제나 가파르다. 언제나 그들은 '존경하는 국민, 친애하는 시민'을 앞세워 인사하지만 존경과 친애는 땅바닥에 떨어져 구두 밑창에 묻은 껌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런 말들을 그대로 담아내는 신문과 방송언어도 말의 위험을 알려주지 못하고 서로 다른 사상의 늪에 빠진 듯하다. 책임 있고 말문을 터 줘야 할 방송과 신문들도 이럴진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비방과 욕설은 오죽하겠는가.

아름다운 섬에서 살고 있는 거제시민들은 얼마나 좋은 말을 하고 들으며 살고 있을까.  모임에서 처음 만난 윗사람과 불편해 하는 나를 보고 '동숭! 술 한 잔 하시게.' 라며 불러주던 따뜻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네'라는 말보다 '동숭아!'하고 부르는 친밀감 있는 말 한마디가 둘 사이에 있던 높고 낯선 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많았던 곳에서 입김 따뜻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거제 사람들이 거칠고 불친절하다는 평가는 크게 잘못됐다. 하도 거친 말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살다보니 모래바람에 문을 닫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닫고 있었을 뿐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거제문예협회에서 실시하는 시 창작 낭송교실에 참가한다. 얼굴로 봐서는 시와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손자를 둔 할아버지도, 살림하는 아줌마도, 직장에 다니며 술 꽤나 마셔대는 사람도 이 날 만큼은 저마다 깊고 아름다운 말의 향기를 낸다.

남을 의식해서 억지로 다듬어진 점잖은 단어를 골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꼭 그 사람에 맞는 말의 향기가 전해진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주고받는 말을 듣노라면 주변은 항상 푸르고 꽃이 만발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꽃을 피우고, 한 여름에도 겨울을 부를 수 있는 능력,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권 아니던가!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가는 시선에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과 문화의 공간과 체험기회가 많아져야 되는 이유다.  

그래서 아름다운 말, 천년 덕을 누리는 고마운 말들이 어느 곳, 누구에게서나 술술 뿜어져 나오는 거제를 만들었으면 한다.

새 임기를 시작하는 시장님부터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식상한 인사 대신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를 낭독한 후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하면 어떨까. 멋진 인사말이 아니겠는가? 그 자리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할 것이고 아름다운 말은 모든 시민들에게 전염되어 다툼 없는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긴 말이 뭐에 필요할까. 짧은 시 한편 낭송으로 시장님은 문학의 멋을 하는 참 좋은 이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를 낭송하는 사람 앞에 누가 감히 만년 덕을 허무는 말을 내 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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