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 수필가 |
비가 내린다
간간이 빗속으로 바람이 스친다
비가 내려와
빈 바닥에 누우면
바람이 속삭인 자국이 남는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촉촉이 바닥을 채워 가는
넉넉한 파문들의 찰랑거림
바람이 비를 가장 어여쁘게 어루만졌던
마음이다
·시 읽기: 김영미 시인은 제주도 토박이다. 이 시는 처녀 시집 『달과 별이 섞어 놓은 시간』(2010)에 실린 시이다. 실제로 연을 가른 듯 행간의 간격이 넓게 편집되어 있다. 그 이유를 시인 나름대로 시각적인 여백의 미를 추구하려는 의도였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이 시에서 '비'와 '바람'이라는 시어는 단순 의미 전달용이 아니다. 자연 생성의 언어이다. 시인은 '하늘과 땅'이라는 대립적 공간에 '비와 바람'이라는 매개어를 끼워 넣음으로써 '속삭임'의 공간을 창조해 내고 있다. 여기서 "동그랗게/ 동그랗게"라는 둥근 원의 시어는, 칼 융의 "총체성을 상징하는 원의 원형이 우리의 꿈과 환상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원형"이라는 말에 대입해 보면, 시인의 꿈과 환상에 나타나는 총체적인 원형이 아닐까? 나아가 작은 '우주'를 상징하고, 속삭임의 파문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면 비약일까? 시적 화자의 눈에는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바닥(빈 바닥)에 눕는다. 그 비가 내리는 빗속의 공간에 바람이 스친다. 동그란 파문으로 "바람이 속삭인 자국이 남는다." 이것은 "바람이 비를 가장 어여쁘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라고 의식한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