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개 어장놀이
팔랑개 어장놀이
  • 거제신문
  • 승인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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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으로 배우는 거제역사 - 거제의 문화예술⑧

조선시대 옥포 앞 바다에는 대구와 청어가 많이 잡혀 임금님께 진상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대구와 청어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임금님께 진상할 고기는 정해져 있는데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배 주인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왜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을까?' 배주인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뱃일을 하는 사람들 끼리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아이구! 힘들어 도저히 못하겠네. 고생고생 일해 봐야 굶주린 배 채우기도 힘들고. 이럴 때 막걸리라도 한 잔 먹으면 일이 잘 될 텐데…”
“그래! 맞아, 일이 너무 힘들어. 그리고 바다 나가서 고기 잡는다는 것이 영 불안해. 용왕님께 제사나 한번 지내면 모를까 파도에 휩쓸려 죽을까 봐 마음 놓고 일을 할 수가 없어”

배주인은 그제야 왜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내일은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그물을 손질하는 날입니다. 배주인은 옆 동네 매구패를 찾아가 내일 신명나게 한 번 놀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동네에 꽹과리 소리, 북소리, 장구소리, 징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일을 하려고 준비하던 동네 사람들 모두 마을 빈터에 모였습니다. 배주인은 미리 준비된 음식을 큰상에 차리고 바다 용왕님께 잘 부탁한다는 제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동내 사람들과 함께 그 음식을 나눠 먹고 풍물패가 치는 가락에 맞춰 신나게 춤도 추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배 주인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하여 다음날부터는 부지런히 일을 하였습니다. 배주인도 부지런히 일하는 동네 사람들이 고마워 철따라 어장을 꾸릴 때마다 풍물패를 초대해 흥을 돋우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전처럼 대구와 청어가 많이 잡히자 배 주인은 더 많은 고기를 임금님께 진상할 수 있었습니다.

팔랑개는 임진란 때 충무공이 첫 승첩을 거둔 옥포만 입구의 작은 어촌마을로 잔잔한 물결이 팔랑팔랑거린다 하여 팔랑포ㆍ파랑포라고 부르던 마을입니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궁조어장으로 지정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식 말살을 시도했던 일본에 의해 중지되었다가 1992년 거제문화원이 팔랑개 어장놀이 민속보존회를 결성하고 중단되었던 어정놀이를 재현해 내었습니다.

이 놀이의 특징은 특정한 날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을 공동으로 어구를 손질하는 등 일상적인 어로작업 때 능률을 올리기 위해 선주가 술과 안주를 내고 풍악을 울리던 것을 점차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풍어제 행사로 변해간 것입니다.

놀이의 구성은 첫째마당은 질굿마당으로 선주가 매구패를 동원해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둘째마당인 도리깨질 마당에는 사람들이 가지고 온 도리깨로 그물에 붙어 있는 불가사리 등을 털어내는 장면이고, 셋째마당 용왕제에서는 용왕께 만선을 빌고, 넷째마당인 그물소리는 배가 그물을 펼쳐 고기를 가득히 잡는 장면이고, 다섯째 마당을 가레마당 또는 만선마당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고기를 한배 가득 잡은 것을 만선이라 하고, 잡아온 고기를 가레로 퍼 나르는 장면을 상징회 합니다.

팔랑개 어장놀이는 1994년 경상남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바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힘든 삶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킨 우리 조상들의 슬기입니다.

정리 : 윤일광 논설위원(자료 :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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