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자산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는 더 이상은 논의대상이 아니다.
문화는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이며 그 속에 내재된 숱한 가치들의 융합이기에 인간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의 기준이 되고 지역과 시대의 정체성이 된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삶의 다양성에 비해 그 속에 토대를 이루는 가치관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나 차단막이 경계가 되지 못하는 현대사회에서 지킬 것과 수용할 것 그리고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거시적 안목이 요구됨은 물론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중되어야 할 순수한 가치, 모두에게 자산이 되는 유무형의 유산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문화의 본바탕이기에 그것을 보는 눈과, 느끼는 예지, 폭넓은 지식과 심도 깊은 깨달음을 통해 이 긍정적인 가치들이 시간과 공간속에 침잔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거제를 생각한다. 유배문학을 낳은 격리의 땅에는 현대사의 비극 6.25전쟁의 흔적이 덧대어 남아 있으며 조선산업으로 대변되는 개발의 아이콘은 포구마다 세워진 만선의 깃발들을 하나씩 지워내고 붉은 황토의 속살을 캐내어 변화의 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민얼굴은 재화의 생산일 뿐 문화적 자산에 대한 담론은 부재하다. 오늘의 거제는 외형적 변화는 심화되고 인문학적 자산은 빈약하다. 거제가 간직해 왔던 가늠할 수 없는 유산들은 날로 상실되고 있어 토대는 점점 엷어지고 있다.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는 거제의 젖줄을 물고 땅과 공기와 물과 그 기운들을 소비하고 물려줄 유산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착하여 살던 이들 조차도 그들이 물려받은 자산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 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대를 이어 땅을 일궈고 삶을 묻고 묻었던 사람들조차도 정체성을 흔드는 변화의 물결 앞에서 망설임 하나 없는 단호한 태도로 유년기의 추억 깃든 골목길, 넓지 않았지만 서리 내리고 이슬 맺히면서 물안개 자욱하던 들녘의 아스라한 기억들을 개발의 논리에 전도되어 땅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스스로 지워낸다.
몸을 눕혀 살고 있지만 젖줄이 마르면 떠날 이들과 자신의 가치를 팔기에 급급한 이들 속에서 정착하지 못한 부산함과 견실하지 못해 들뜬 빈한한 가치들이 혼재되어 있음이 당연하다.
삶의 역사는 마치 거대한 순환 장치와 같은 시간의 카테고리...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 지금 우리가 신뢰하는 그 가치는 영원하지 않다. 다만 시대를 초월한 정신적 유산은 억겁을 약속하며 인간정신의 자아를 이룰 뿐이다.
혼미함을 걷고 경박한 삶의 가치에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리고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전자처럼 심어진 원형의 가치를 찾아나서야 한다. 우리정신의 원형질을 찾아 험로를 나서는 “원형을 찾아서”는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정착하고 거제문화의 맥을 조형화 하려는 거제미술의 실험적 행위, 그 작업의 서막이다.
새파란 바다와 붉은 황토의 애끓는 색조. 심연의 바다, 그 언덕위에 줄지어 서 귀로를 염원하는 동백의 애절함. 두터운 벽 그 너머의 고립. 둔덕골 산길을 올라서 마주한 유배의 역사 문득 발길에 차이 듯 우연히 마주치는 고대의 조각들.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같은 포구의 깃발들.
차마 관광객들에게 눈요기로 던져 버릴 수 만 없는 소중한 것들…, 그 빛나는 원형질들은 조형언어로 표현되어 거제문화의 토대를 이룰 것이기에 우리는 이제 그 원형을 찾는 항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