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 거제신문
  • 승인 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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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20년도 훨씬 더 전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을 입학한 첫날 수강신청을 하기위해 사범대학에 있는 학과 사무실을 찾아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 어리비리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찾고 있는데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한마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뭐시라고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니. 이거 나한테 하는 말인감? 그 당시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작은 키를 보고 한 말이라고 단정한 나는 뒤를 획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나이 든 아저씨 한 사람이 내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는데 주변을 보니 나 외는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분명 이 말은 나 들으라 한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대학 입학 첫 날부터 무슨 재수 옴 붙은 발언이란 말인가. 순간적으로 기분이 무척 상한 나는 그 아저씨를 향해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아저씨. 지금 나한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나요? 내가 키 작은데 아저씨 뭐 보태준 것 있어요? 정말 입학 첫 날부터 속상합니다."

그 아저씨, 당황하여 얼굴이 벌게지더니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학생,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나는 진정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지 학생의 키가 작은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고 뭐고,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였으면 그런 거 아닌가요? 사과하세요."

결국 그 아저씨는 격분한 내 앞에서 자신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학생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그걸로 부족하다고 느낀 나는 몇 마디 덧붙여 투덜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교양국어 첫 강의 시간이었다. 강의가 시작되어 교수님이 등장했는데 그 순간 나는 휘리릭 증발해버리고 싶어졌다. 그 교수님은 바로 어제 내가 계단 끝에서 서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사과하라고 윽박질렀던 그 아저씨. 그 사람이었다.

제발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빌고 빌었으나 교수님은 수업을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나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 분의 그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제 이 과목에서 낙제 했구나를 외쳤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매 수업시간 나는 교수님의 단골 지목학생이 되어 수업을 빼먹고 미팅을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아주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와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나 알아보니, 딱히 작은 사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은 독일 태생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경제비평서 제목으로 이제는 이 말 자체가 하나의 명제처럼 쓰여진다는 것이다.

슈마허가 사용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인간중심의 경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어쨌거나 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수준에서 키가 작은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했다.

이렇듯 지적 수준이 다르면 같은 말이라도 비난의 말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느낀다.

대화의 준비나 수준이 되어있지 않은 개인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의도한 것처럼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단 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체로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의도로 얘기를 해도 그들이 공유한 생각을 기본 바탕에 두고 이해하므로 대부분의 대화와 충고를 자신들이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해서 해석하고 행동 또한 그 해석한 쪽으로 실천에 옮기며 다른 사람들의 충고 자체를 공격으로 받아들여 극단적으로 반응한다.

어느 한 방향에선 분명히 닫혀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고도 자신들의 닫힌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주장을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주장할 뿐이다. 갑갑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20여 년 전 당신의 좋은 의도가 무식한 제자에게 오해받아 억지로 사과를 강요당한 교수님의 심정이 백 번 이해된다. 늦었지만 나는 그 분께 깊이 사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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