羊頭狗肉은 영원한 유혹
羊頭狗肉은 영원한 유혹
  • 거제신문
  • 승인 2007.0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거제칼럼위원

중국 역사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유명한 도적이라고 하면 도척(盜척)을 꼽는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와 동시대 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형이 유하혜인데 대단한 현인으로 꼽히고 있다. 도척은 도당 9천여명을 이끌고 다니면서 천하를 휩쓸었다.
그는 대도(大盜)답게 공자의 말을 자기 말처럼 지껄이고 다녔다.

이를테면 강도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길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요, 마지막 나오는 것이 의(義)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후한 때 광무제의 조서 중에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말고기를 팔고 있으며, 도척이 공자의 말씀을 뇌까리고 다닌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요즘 쓰고 있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은 본래 양두마박(羊頭馬膊:마박은 말의 건육을 뜻한다)에서 유래한다.

또 한 가지 안자춘추(晏子春秋)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제나라 영공(靈公)은 남장여인을 좋아했다. 그런 괴벽 탓에 궁중의 모든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 옷을 입혀 놓고 즐겼다.

왕이 그러니까 온 나라 안에 여자들이 남장하기를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왕은 엄격한 금지령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궁중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의 남장을 묵인했다.

지엄한 왕의 분부가 백성에게 먹혀들지 않자 왕은 재상 안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안자는 「임금께서는 안으로는 묵인하고, 밖으로는 금하고 계신데 이는 곧 소머리를 걸어 놓고 말고기를 파는(牛首馬膊) 것과 다름없지 않느냐」고 진언한다.

어느 것이나 뜻은 마찬가지겠지만 소나 양, 말고기에서 이제는 개고기로 바뀐 게 재미있다.
가짜는 사전적인 뜻으로 참이 아닌 것을 참인체하는 것으로 한자어로는 사이비(似而非)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떨칠 수 없는 유혹의 그물이다.

얼마 전 가짜 박상민을 보면서 닮아도 너무 닮아 놀랐다. 연예인 짝퉁이 더러 있긴 하지만 아예 드러내 놓고 가짜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활동하지만 가짜 박상민의 경우는 진짜 박상민의 행세를 하고 다녔기에 문제가 된다.

중국은 요즘 가짜 식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리알을 붉게 보이려고 발암물질에 담그고, 부패한 국수는 갈아서 밀가루에 섞고, 당면 원료로 짝퉁 샥스핀을 만들고, 심지어 골판지 만두소 문제는 그게 어디까지 진실인지 헷갈리기 딱 알맞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과 너무나 흡사해서 오히려 두려움까지 느낀다. 대화가 피카소가 만년에 말하기를 「사람들은 내 그림을 사는 게 아니라 내 사인을 산다」고 했다.

피카소의 사인처럼 제 아무리 능력 있고 해당분야에 실력이 있어도 학벌이 뒤를 받쳐주지 않거나 라이센스(免許)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우리 사회다. 여기에 수많은 인재들이 막혀 침몰하고 만다.

조선시대만 해도 뛰어난 인재들이 서얼이라는 이름 때문에, 혹은 중인이라는 신분으로는 양반들이 만들어 놓은 카르텔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가짜 족보를 사거나 만들었고, 매관매직을 통해서라도 신분상승의 계기를 삼고자 했다.

큐레이터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수석큐레이터를 거쳐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맡고 이후 대학강사를 거쳐 동국대 교수에 임용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 일부 기업의 문화자문위원 뿐 아니라 내년에 열릴 ‘2008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신정아씨의 가짜 박사사건이 단연 화제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KBS 라디오 영어강의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를 7년간이나 진행해온 이지영씨의 학력문제가 불거졌다.

영국 브라이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그의 이력이 실제로는 국내에서 초중고 마친 후 영국 랭귀지학원 1년, 기술전문학교 1년 수학한 게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영어가 좔좔하는 걸 보면 학위와 실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맑고 투명해도 양두구육은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