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개 곤발네 할매 이야기
대숲개 곤발네 할매 이야기
  • 거제신문
  • 승인 2014.0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으로 배우는 거제역사 - 거제의 구비문학①

지금의 거제면 오수리 죽림포 마을에 곤발네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대숲개’는 대나무 죽(竹)과 수풀 림(林) 그리고 바닷가를 나타내는 포(浦)로 죽림포의 예 지명입니다. ‘곤발네 ’는 마을사람들이 불렀던 택호로 젊었을 때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70살이 되었던 1885년 을유년 흉년 때 자기 재산을 모두 들여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을 살려낸 아름다운 전설입니다.

할머니는 부지런하여 한시라도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밭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남의 집 삯바늘질도 해 주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밭 한 뙈기들 샀습니다. 곤발네 할머니는 이 밭에다 수수와 조를 심어서 열심히 가꾸며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삼백 년 만에 한번쯤 당하는 대단히 큰 가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고 있을 때 곤발네 할머니의 동네인 대숲개마을에도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서 산과 들을 헤매기 시작하였습니다.

“큰일 났구나. 이러다가 온 마을사람들이 다 굶어죽겠구나. 가뭄으로 죽어가는 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을의 원님은 굶어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가뭄으로 온 산천이 말라버려 농사가 되지 않는 마당에 원님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곡식이 떨어져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어른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풀뿌리와 해초를 뜯어 풀죽으로 연명하다보니 대숲개마을 아이들은 몸이 퉁퉁 부어 누렇게 변해 갔습니다.

“쯧쯧, 어른들도 굶는다는 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저 어린것들이 무슨 죄가 있담. 저 어린 것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곤발네 할머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할머니는 가뭄에도 잘 견디는 조와 수수를 심어 수확한 것이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 조와 수수를 삶아서 엿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곤발네 집에서 엿을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나누어 먹자고 우기면 할 수 없이 다 내 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엿 냄새라도 나면 어른들에게 알려질까 봐 오줌통을 깨끗이 씻어 그 속에 엿을 넣어 담장 밑 변소에 숨겨두었습니다. 어른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른들이 모두 산으로 들로 바다로 먹을 것을 찾아 나가고 난 뒤 어린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엿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돌아오면 절대 엿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당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엿을 얻어먹은 어린 아이들은 한 명씩 한 명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만들어 놓은 엿이 다 떨어지면, 또 다시 엿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을 찾아가서 먹였습니다. 곤발네 할머니의 수수와 조가 다 떨어질 때쯤 기나긴 흉년이 끝났습니다. 다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곤발네 할머니는 어린이와 장애아를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곤발네 할머니의 기지와 봉사적인 정신으로 흉년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구한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이 이야기는 거제면 오수리 대숲개 마을뿐 아니라 거제 전체에 거의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고 난 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게으르며 먹기만 좋아하면 “너는 대숲개 곤발네 할매 집에 가거라.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아도 할매가 똥통에 담아 논 엿을 줄테니까”하고 윽박질렀습니다.

대숲개 곤발네 할매이야기는 굶주렸을 때 어린이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정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리 : 윤일광 논설위원(자료 :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