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의 미학
모순(矛盾)의 미학
  • 거제신문
  • 승인 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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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논설위원

우리나라 전래동화 가운데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니 어머니의 마음이 즐겁지만 소금장수 아들이 걱정이었다.

다음날 해가 쨍쨍 뜨자 어머니는 소금장수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즐겁지만 우산장수 아들이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의 갈등은 바로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시사하고 있다.

돈을 버느라고 바빴을 때는 건강 따위야 그게 뭐 대수냐며 큰소리치다가 돈이 많아지면 잃어버린 건강을 찾는다고 그동안 모은 재산을 다 쓴다. 깨끗한 벽에 큼지막하게 낙서금지라고 써놓은 경우를 자주 본다.

그 벽의 주인 입장에서는 낙서라고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게 바로 낙서다. 어려서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지만 막상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은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의 모순이면서, 서로 모순되는 두 명제가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주장되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의 모순이다.

중국 초나라 때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과 어떤 창도 뚫지 못하는 방패를 파는 장수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眞)이 될 수 없는 상태를 논리학에서는 모순(矛盾)이라 한다. 우리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가수 이효리씨가 '삶은 모순 덩어리'라며 자신의 생활을 밝힌 글이 있다.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좋아하고, 반딧불이는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이고, 숲을 사랑하지만 집은 짓고 돼지고기는 먹지 않지만 고사 때 돼지머리 앞에선 절을 하죠.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어요.' 그 어떤 시보다 강렬하고 그 어떤 문장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모순의 미학' 참으로 아름다운 모순이라고 이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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