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의 잔인한 손길은 그래도 위대한 열매의 터전을 깊이 보전하고 있다. 초록으로 뒤덮이는 산천이 풍요롭기까지 한 것이다. 어쩌면 황무지나 겨울 같이 대지가 메마르고 때로는 재난과 전쟁으로 초토의 지경에 이르러도 시련과 자연의 깊은 내면은 거기에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자애로운 신의 섭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폭력으로 일관된 사태는 그 잔인함을 저주하게 된다. 더러 TV화면에 나타나는 북한의 지나친 폭력 행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장성택은 북한 김정은 수령의 고모부였다. 그는 개방적인 경제활로를 찾아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일인자적 지위를 꿈꾸고 있었다고도 한다.
장성택의 이러한 일이 김정은 위원장 및 당 고위 군부 실세들의 빌미가 되어 끝내 숙청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군인에 이끌려 총살로 처형되는 장성택의 모습은 사람으로서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을 우리들은 화면으로 보았다.
단적으로 이러한 잔인한 일을 저지르는데 추호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은 폭력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폭력들은 아무 반성 없이 자행되고 있고 그 위험성은 더하다. 반성과 자기성찰 없는 폭력적 성과는 허상이다. 있을 수가 없다.
가령 우리들은 폭파된 후의 세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폭파된 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한없이 긴장된 모습일까? 아니면 고요한 평화의 가면일까? 폭력이나 폭파로 쟁취한 세계는 그것은 아무래도 진정한 축복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6·25전쟁(1950.6.25)·연평도포격(2010.11.23.)·천안함 피격(2010.3.26) 등의 전쟁 내지 비인간적 도발을 저지른 북한은 반성과 사과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토강점·민족 말살정책·군국주의 위안부 밀조의 파렴치 등 일본 제국잔재 극우파들 역시 이들의 반성 없는 욕망은 동아시아와 세계의 우환이 되고 있음이 현실이다. 다행히 중국의 오랜 역사와 인문문화적 우린(友隣)은 상생의 믿음을 세계에 심고 있음을 지난 7월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한국 서울대 방문강연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특히 인문교류에 대하서 "…중국태극문화의 유래는 오래 되었고 한국의 국기는 태극기다. 우리 양국은 음양이 상생하고 강약이 서로 보완이 된다는 오래된 철학적 이치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러한 인문문화의 교류는 민중들 사이에서 친근함이 강화되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부드러운 힘이 된다고 했다.
우리와는 혈맹관계에 있는 미국이 중국과 동서 양대 축으로 폭력이 아닌 문화의 깊은 신뢰와 자각에 앞서 있다는 것은 여기에 한국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능동적 소임을 다함으로써 생존의 길이 있다.
세계와 주변 국가들의 변화를 예감하고 자기 중심에서 이에 대처하고자 하는 국민적 결의는 꼭 인문 문화적 역사의식에 있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복원하는 길은 항상 기회로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 일부 정치현실이 극좌와 종북의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지난 10년의 강산을 우리들은 지난 대선에서 다시 찾아 반성과 각오를 다지는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번 7·30 전국 15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역시 자유민주주의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정당을 대표하는 입후보자가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의 실현에 중심이 굴절되지 않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혹시 인내심을 저버리고 깊은 통찰 없이 당리에 급급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행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올바른 국익을 모우는 일에 합심 진력하여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