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버지가 회초리를 맞는 연좌문화는 우리 고유의 전통 중의 하나였다. 깊은 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으로 간다. 아버지는 묘 앞 상석위에 종아리를 걷고 올라서서 고하기를 "불초 제 자식 하나 올바르게 키우지 못해 조상님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다 저의 불찰입니다. 제가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하고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어 아버지의 종아리를 치게 했다. 이를 '조상매'라 하는데 이쯤 되면 아무리 강퍅한 아들이라도 아버지 앞에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자식의 잘못에 대해 아버지를 여러 사람 앞에서 남우세시키는 '만좌면책(滿座面責)'도 있다. 마을회의에 아버지를 불러 앉히고 "당신은 아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이냐"며 망신을 주는 벌이다. 자치규약인 '향약'에 나오는 용어다. 동네 창피뿐 아니라 아버지는 문중회의에 불러나가 자식을 대신해서 용서를 빌게 되는데 이를 '걸량'이라 했다. 이래저래 잘못된 자식을 두면 아버지는 동네에서나 문중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현대에 와서도 미국 오리건주의 한 소도시에서는 청소년이 비행을 저질렀을 경우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심하면 구류까지 살게 하자 청소년비행이 40% 가까이 줄었다고 해서 점차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경에도 자식의 잘못 때문에 가문의 몰락을 가져온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 제사장이다. 엘리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목사면서 신학교 총장쯤 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세만 믿고 안하무인이었던 두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하느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그 가문은 영원히 몰락하고 만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의 잘못에 대해 부모의 책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