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당(鵝洲堂)은 거제시 아주동과 아양동 사이 산 언덕배기에 있던 당집으로 자신을 사랑해 준 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새 지네와 싸우다 죽은 두꺼비의 넋을 위로해 주던 곳입니다. 당이 있었다하여 마을 이름도 '당 고갯길'이라는 뜻으로 '당목(堂項)'이라고 불렀고 산 이름도 당등산(堂嶝山)입니다.
거제는 지금부터 약 1350여 년 전 신라문무왕 17년(677년)에 상군(裳郡)을 설치하고 아주, 명진, 송변의 삼속현을 두고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현에 원님이 부임만 해오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문이 퍼지자 아주현 현령으로 임명을 받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부임을 꺼린 탓에 한동안 아주현에는 현령 없는 마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궁리 끝에 이 일은 분명 어떤 괴물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처자를 괴물에게 바쳐 괴물의 노여움을 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몹시 가난하여 남의 집 식모로 일하던 처자에게 원님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그 대가로 부모님이 평생 먹을 수 있는 논밭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괴물의 제물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효성이 깊었던 처자라 자기 몸을 희생하여 부모님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처자는 혼자 원님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밤 12시가 가까워졌는데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처자는 숨을 죽이고 쳐다보았습니다.

처자가 식모로 일 할 때, 때만 되면 부엌으로 찾아오는 어린 두꺼비에게 남은 밥을 주곤 했는데 그 두꺼비가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큰 두꺼비가 되어 찾아 온 것입니다. 혼자 있던 처자는 무섭고 슬프기도 했지만 두꺼비를 보는 순간 너무나 반가워 상에 차려진 음식을 주었습니다.
두꺼비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자는 두꺼비가 음식을 먹는 동안 답답한 마음도 풀 겸 잠시 밖에 나왔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죽어 있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두꺼비가 죽어 있다니……."
방바닥에는 두꺼비가 죽어 있었습니다. 처자는 깜짝 놀라 이리저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정에는 엄청나게 큰 지네 한 마리가 죽어 대들보에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두꺼비가 나를 구하기 위하여 이 방으로 들어 왔구나."
처자는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두꺼비가 고맙고 불쌍하여 두꺼비를 안고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처자를 묻어주기 위하여 괭이와 삽을 들고 관아를 찾았을 때 모두 놀랐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처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은혜 갚은 두꺼비를 국사봉 아래 묻어주었지만 지네는 큰 가마솥에 참기름을 붓고 볶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지네의 영혼까지 없앨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가루를 옥포만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 후로 옥포만에는 음력 4ㆍ5월이 되면 바닷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물이 들 때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 먹으면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며 온몸에 열이 끓었습니다. 독지네의 가루 탓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아주 일대에 알 수 없는 괴질로 많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더구나 심하면 3∼4일 고열로 앓다가 죽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바지락조개를 캐 먹은 사람들이었고 보건사회부의 역학조사 결과 비브리오균으로 밝혀졌습니다.
1973년 이 갯벌에 대우해양조선소가 조성되면서 아주당은 없어졌고, 두꺼비와 독지네 그리고 마을을 구한 처자의 이야기도 먼 전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리: 윤일광 논설위원(자료: 거제교육지원청 '거제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