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8월! 발끝으로 시원함을 느끼다
거제의 8월! 발끝으로 시원함을 느끼다
  • 이상욱 기자
  • 승인 2014.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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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 유명세 떨치는 지역관광1번지 바람의 언덕
산책로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에 탄성이 절로

시원한 바람이 무척이나 그리운 무더운 8월. 탁트인 바다와 상쾌한 공기를 맡으러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바람의 언덕'을 찾았다.

누가 이곳을 바람의 언덕이라고 불렀을까?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항시 바람이 센 탓에 나무는 잘 자랄 수도 없다. 풀마저도 낮게 자란다. 자그마한 곶이다. 이곳의 명성은 전국에서 최고다. 언젠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제일 가보고 싶은 곳 1위가 이곳 '바람의 언덕'이 아니던가.

외도와 해금강을 돌아 도장포로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유람선들이 부산하다. 유람선 뱃머리에 두 갈래로 갈라지는 하얀 포말을 바라보며 다들 선장의 걸쭉한 관광멘트에 재미있어 하는 표정들이다. 원래 이곳의 이름은 '망릉잔디밭등'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거제시청 공무원 반동식 씨의 혜안으로 유명한 바람의 언덕이 탄생한다. 남부면사무소에 근무할 적에 염소들만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착안해 시청에 예산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산책용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나니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와서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풍차를 세워 놨다. 사진애호가들의 사진촬영 하기엔 그저 그만이란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니다. 인천 소래포구에 가면 넓다란 갯벌을 바라보고 풍차가 쌍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은 더 넓은 갯벌과 갈대밭이 네덜란드 분위기와 비슷하나, 이 좁은 언덕배기 비탈진 곳에 풍차라. 사람의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바람을 상징한다고 풍차만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스에서는 이런 곳에다 풍차를 세울까? 아마 그들은 세운다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나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 같은 상을 세우겠지. 아쉬움이 나만의 생각이길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거제도 도장포는 바람의 언덕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람의언덕 끄트머리에는 무덤이 하나 있다. 어느 집안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필요는 없었다. 묘지는 풀을 벨 것도 없었다. 대머리처럼 반질반질 벗겨진데다 잔돌들이 무덤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거제시에서 줄로 펜스를 쳐놓았을 뿐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무덤 주위를 마치 어느 왕릉을 참배하듯이 바라보며 지나간다.

언덕 뒤쪽으로는 둘레길 산책로도 참 아름답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산책로를 따라 한 번 돌아보라. 고기 잘 잡히는 정치망 어장이 있던 곳, 저 멀리 하얀 부표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 학동만을 바라보며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조화를 이룬 숲길을 따라 연인끼리 사랑을 속삭이며 걸어간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시원한 바람까지, 아름다운 이곳에서 저기 저 연인들처럼 나도 좋은 추억 하나 갖고 싶어진다.

파도와 섬을 감싸 안은 일운 서이말등대
유람선이 그려내는 환상적인 풍경화로 손짓

와현 고갯마루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들머리로 바다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안으로 들어간다. 적당히 불어주는 해풍과 바다가 품고 있는 섬들이 풍경화가 된다. 눈도 가슴도 즐거운 발걸음이다. 십여 분가량 들어가니 석유비축기지와 서이말등대 가는 길로 나뉘는 초입에 초소가 있다. 경비원이 길을 열어주며 잘 다녀오란 인사를 건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열려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낯선 풍경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숲길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산새소리 풀벌레소리에 바람소리도 화음을 넣는다. 인적 없는 한적한 숲길에 길벗 되어 함께하는 소리가 있으니 발걸음도 박자를 맞추듯 가벼워진다. 숲이 내주는 그늘에, 목덜미를 훑고 가는 바람까지 있으니 아쉬울 게 없다.

서너 명이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걷기에 더 없이 좋은 오솔길이다. 숲 뒤편에 숨어 있는 바다를 곁에 두고 걷노라니 사뭇 설렌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반짝반짝 나뭇잎 그림을 그린다. 소소한 일상에서조차 조급증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을 띄엄띄엄 떼어놓는 여유를 준다. 내안의 상념들이 사라진다.

이십여 분가량 걸었을 즈음,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대로 직진하면 서이말등대와 공곶이, 오른쪽 숲길을 오르면 봉수대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갈림길에 서서 길을 나설 때의 목적은 잊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어느 길을 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남을 터. 바람결을 따라 가만가만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고,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가면 될 것이다. 다른 무엇을 가늠하고 생각하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길섶 눈에 띄는 곳에 '야생동물주의' 표지판이 있다. 무심코 글자 위쪽에 그려진 멧돼지 눈빛과 마주치자 신경이 곤두선다. 자연의 소리에 묻혀 지금껏 들리지 않던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린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거제도의 다른 명소에 비해 드나드는 이가 많지 않다. 사람의 손길이 덜 미친 것이라든가, 국가시설물로 인해 보호 받는 등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얼마쯤 걸었을까. 숲이 사라지고 느닷없이 푸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아가는 걸음만큼씩 숲은 뒤로 밀려나고, 숨어있던 바다가 불쑥 다가온 것이다. 바다가 품고 있던 섬들이 보이고, 길이 끝나는 언덕배기에서 서이말등대가 하얀 얼굴로 반긴다. 내도와 외도, 해금강과 지심도, 그리고 갈매기 섬으로 유명한 홍도. 날씨가 특히 좋은 날은 대마도까지도 볼 수 있단다.

부서져 내린 햇살과 쪽빛바다와 섬, 그것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하얀 등대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또한 섬과 섬 사이를 유영하듯 옮겨 다니는 유람선. 그 유람선이 다니면서 만드는 하얀 바닷길도 풍경이 되고 그림이 된다. 마치 자연이 내게 선물하듯 그려내는 풍경화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시간 남짓 숲길을 걸어, 길이 끝나는 언덕배기에서 만나는 원통의 하얀등대. 서이말등대다. 서이말은 불쑥 튀어나온 곶으로, 그 모양이 마치 쥐의 입과 같다 해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거제도 유일의 유인등대이기도 하다.

바다에 노을이 물들고 어둠이 내리면 등대는 또다시 불을 밝히고 바다를 향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밤바다에 떠 있는 섬과 배 그리고 사람에게도 희망이 되고 따뜻한 위로가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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