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한가? 그대 마음은
무사한가? 그대 마음은
  • 거제신문
  • 승인 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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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풀벌레 우는 가을이다.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우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찬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나 차 소리에, 또는 경망하기 짝이 없는 텔레비전 소리에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풀벌레 소리를 잊을 뻔 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그저 이명 같은 계절의 소음이었을 그 소리에는 평소에는 들리지 않는 작은 풀벌레들의 속삭임도 있다.

그 소리가 클래식 음악처럼 환하게 들린다. 여린 몸으로 얼마나 두근거리며 가을을 나고 있을까 염려하면 두껍고 무디어진 내 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저들은 돌아오는 가을마다 그 자리에서 노래하였을 것이다. 화려한 영상과 출력 높은 스피커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와 나의 무감각에 놀란 풀벌레 소리는 다시 허공으로 사라졌으리라.

자연의 소리에 소홀해질 만큼 내 감각을 무디게 만든 것은 세상의 잡소리 '미디어'이다. '미디어'가 주는 장단점에 대해서는 숱한 이야기들이 있어왔다.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인지,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도구인지 대해서는 이용하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캐나다의 문화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은 우리는 너무 쉽게 기술적 도구들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죄는 묻지 않고, 대신 그 도구들을 속죄양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서, '미디어' 그 자체만으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의 내용과 수용자의 참여도에 따라 좋은지 나쁜지를 구분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지만 그 자체가 바보상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처럼. 그런 점에서 의식적으로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신문 등을 잘 이용하려는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미디어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차라리 미디어의 날선 공격 앞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형태다. 언론들은 각기 같은 사실을 보도하는 듯 하지만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사실들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어 버린다. 마음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미디어의 나쁜 예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음악이나 동영상 파일을 받아들일 때 투자되는 시각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이미 다 끝난 가족들의 저녁상을 즐겨보는 드라마만 보고 치운다는 것이 잠 잘 시간까지 텔레비전 앞에 잡아두는 그 마력 앞에 마음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잠시 휴대전화 속에 속출하고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둘러보다가 새벽을 맞게 되었을 때 우리들의 마음은 편안하고 즐거웠을까? 우리의 시각과 청각은 물론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하고 억압하다시피 하고 있는 사람의 미디어 사랑 앞에 당신의 마음은 또 무사하였을까?

텔레비전을 끄고 이제 스스로의 마음을 켜보자. 2014년 시작부터 굵직한 사건 사고들로 인해 유난히 지친 나의 눈에 현란한 빛 대신 낭만이 있는 가을의 빛을, 나의 귀에 어디서나 들리는 소음 대신에 별이 떠드는 소리 같은 풀벌레 소리를 담아보자. 그 언젠가 짙푸른 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오롯이 품어 예민한 감성으로 사랑을 느끼고 설레임을 스스로 다독거렸듯 마음에 풀벌레 우는 소리를 담아보자.  

가을이면 여기저기 꽃 축제와 시화전, 백일장 같은 문학제가 열린다. 거제시도 9월26일부터 청마문학제가 시작되고, 9월29일부터 시청, 문화예술회관, 섬꽃축제장, 백병원을 도는 시화전이 열린다. 가을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산으로 들로 문학축제 속으로 자신을 버려두면 학창시절 같은 감수성이 달빛처럼 쏟아져 지친 마음을 보듬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창을 열고 귀 기울면 별이라도 떠서 풀벌레 소리에 푸른 물방울이 튕길 것 같은 환한 소리에 무덥던 세상은 시간처럼 멀어져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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