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법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일 둔덕면 거림리 해발 3백26m 우봉산 자락 폐왕성터에서 성 주둔병력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연지(蓮池) 발굴 현장설명회를 갖고 그 흔적과 발굴품 등을 공개했다.
이날 설명회와 함께 지난 2004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동문지와 동쪽 채성 조사, 그리고 1999년 동아대학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연지의 축성연대는 통일신라시대 초 만들어진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에 걸쳐 연차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폐왕성 하단에 설치한 연지는 평지를 굴착해 인공적인 못을 만들었다. 최초의 연지는 원형으로 생토를 굴착, 호안 석축을 쌓고 석축과 굴착된 사이 약 2m 간격으로 황갈색 흙을 다져 넣어 연지에 있는 물이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는 방수역할을 하게 했다.
이 연지는 퇴수구가 없는 집수시설로 빗물 등을 저장해 성내에 사는 사람들의 음용수로 이용했다. 여기에 저장되는 물은 16만6천ℓ로 주둔병력을 1백명으로 가정하고 하루 2ℓ의 물을 사용했다면 8백30일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번 발굴에서 연지 아래 뻘층에서 기와 자기 청동유물 목기 짐승뼈 등 수백여점이 출토됐다. 기와는 단판 타날의 선조문 기와를 시작으로 어골문, 복합문, 화문 등의 다양한 문양으로 통일신라시대 초기부터 고려시대 중기의 것으로 판명됐다.

이 가운데 1점의 청동그릇 아래쪽 바깥면에 ‘당포하화월’이란 명문 청동그릇 편린은 특이한 유물이다. 당포라는 사람이 좋은 시기에 만들었다는 뜻.
박종익 전문위원은 “2개월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발굴된 원형의 연지와 많은 출토품은 폐왕성에 대한 새로운 자료로 가치가 높다”면서 “천년의 세월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연지석축의 원상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연지에 따른 당시의 건물지와 남쪽과 서쪽 문지 발굴과 기성현지(岐城縣祉) 발굴도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남도기념물 제11호인 폐왕성터는 1170년 고려 의종 때 정중부 등이 무신의 난을 일으키자 의종이 이곳으로 쫓겨 와 쌓았다고 해서 ‘폐왕성’으로 불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