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여심> 할머니 되던 날
<계룡여심> 할머니 되던 날
  • 거제신문
  • 승인 2007.08.16
  • 호수 1
  • 1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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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내

아침 여섯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서둘러 수화기를 들어보니 사위다. 병원이라고 했다.
딸아이에게 진통이 있는 모양이다. 예정일이 며칠이나 지났기에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걱정스러운지 사위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첫 출산이라 시간이 제법 걸릴 터이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위로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딸아이를 낳을 때가 떠오른다. 삼십 년이 지난 당시의 기억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눈앞에 아른거린다.

음력 칠월 보름, 새벽하늘엔 둥근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조금씩 심해지는 진통에 잠이 오질 않았다.  오만 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르고, 결국 날밤을 꼬박 새웠다.

잘 낳을 수 있을지. 무사하게 낳았다 해도 열손가락 다 정상일지. 어디 잘못 된 곳은 없을지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앞섰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세상 근심 혼자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조급하고 어수선하다. 곁에 있어 주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사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일찍 분만실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귀띔을 하기 위해서였다. 친정 동생이 일찍 분만실로 들어가서 열 몇 시간의 진통을 겪고서 결국 수술을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힘이 빠져 탈진을 하면 어쩔까 싶어 아침을 먹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힘없던 사위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 있다.

목소리엔 생동감이 넘친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함박웃음을 짓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머니, 애기 낳았어요.”
“벌써? 그래 애썼다.”

그 순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금쯤 딸아이도 고통을 이겨낸 후의 환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속에서 열 달 내내 품었다가 새 생명인 분신을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말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고 있었던가. 그렇게 불안하던 마음이 순산했다는 한마디에 모든 시름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첫 외손자를 보았다는 기쁨도 컸지만, 딸아이가 긴 시간 고통 받지 않고 순조롭게 순산했다는 것이 더 반가웠다. 모든 어미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딸아이의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던가.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다니 더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연이어 전화벨이 울린다. 안사돈의 전화다. “우리 할머니 됐어요. 축하드립니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다. 안사돈도 무척 걱정했던 모양이다. 같은 여자로서 그 고통을 잘 알 터이니 나와 어찌 다를 것인가.

사실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서글픔을 느꼈다. 나이를 실감하게 되고, 아주머니에서 한 단계 할머니로 불리어질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내 나이가 많은 것 같고, 이젠 정말 늙은 건가 보다 했다.

그런데 사돈의 한 마디가 왜 그리 정겨운 걸까. 늙는다는 것도 서글픈 할머니라는 생각도 달아나버렸다. 내 마음 속에 뜨거움이 울컥 솟는다.

‘내가 이제 할머니가 됐어. 나 이제 할머니야.’

손자들의 재롱을 봐 가며 노후를 보낼 생각을 하니 할머니가 된다는 것도 싫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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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2007-08-19 20:07:51
할머니 되셨네요. 축하합니다.
저는 언제 할머니? 그 영광의 직함을,,,,,,
아기천사의 가정에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