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순종하였는가?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은 창세기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셨다.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땅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그 땅이 해변에 있는지 산속에 있는지 아브라함은 몰랐다.
이사 가서는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지 고기를 잡으며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이사를 간다. 고향을 떠나고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간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아갔던 것이다.
아브라함이라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동안 기반잡고 살아왔던 모든 것 내려놓고 떠날 때에 두렵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떠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왜 무겁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가 갈 바는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약속하며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믿음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슨 일이고 어떤 일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찬송하며 살 수 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하는가? 내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염려하고 걱정하는가? 갈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갈 바를 찾고 있기 때문에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왜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고 찬송보다는 짜증이 많은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갈 바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 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