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자 / '문장21' 시 등단
숲 가득
야윈 햇살로 채색하는 잎새마다
숭숭 뚫린 하늘
어느 화공의 눈길이 지나갔는지
온 산이 술렁인다
얼마나 오랜 이별을 연습했을까
굴참나무가지를 흔들며
우듬지에서 뿌리까지
목관 악기의 낮은 음률로
귀를 열어
비우고 떠나는
가을의 등이 시리다
·시 읽기:《문장21》(2014. 가을호)에 실린 시이다. 시인은 가을 산의 풍경을 말하고 있다. 가을 산을 "어느 화공의 눈길이 지나갔는지 온 산이 술렁인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가을 산의 나무숲에는 야윈 햇살이 가득히 내려앉고, 잎새의 구멍 뚫린 곳마다 채색한 듯 하늘이 보인다고 인식한다. 나아가 단풍 든 가을 나뭇잎을 보고 "오랜 이별을 연습했"다고 인식한다. 결국에는 그 이별이 실행될 때 굴참나무의 가지를 흔들며 떨어짐을 말하고 있다. 이 잎새는 떨어진다는 시각적 이미지에서 "목관악기의 낮은 음률"이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해 나가고, "가을 등이 시리다"라는 촉각적 이미지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이 같은 공감각적 이미지로 전환해 나가는 장치가 시의 묘미를 더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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