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 산을 다시 보면
오른 산을 다시 보면
  • 거제신문
  • 승인 201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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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가을 산을 다녀왔다. 숨을 헐떡이며 산 정상까지 올라 바라 본 단풍은 아름답다 할 밖에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환호도 지르고 자신의 폐를 갈아엎기라도 할 듯 들숨과 날숨을 격하게 반복한다. 자신이 오른 산길을 훑어보며 저 먼 길을 걸어서 올라 온 자신의 인내에 감탄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가픈 숨을 단숨에 풀어 버린다. 절로 일상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달아나는 기분이다.

정상에 오른 기쁨도 맛보았으니 각자의 배낭에 준비한 음식을 꺼내놓고 꺼진 배를 채울 차례다. 산 정상 여기저기 펼쳐진 음식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음식들까지 짊어지고 왔을까 궁금해지는 진수성찬도 있다. 간단한 김밥에서부터 과일은 물론, 전날 밤새워 다듬고 정성을 들였을 묵직한 음식까지 먹는 모습을 보면 저게 진정한 맛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술이 빠질 리 없다. 건강을 위해 산을 찾았겠지만, 정상에서 그 정도의 술은 애교로 보아도 된다.

얼마나 애정이 남달랐으면 산에까지 데리고 온 애견들도 보인다.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자녀를 데리고 오르는 가족을 보면 그 애정이 더 탐난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어른들보다 가볍게 산을 잘도 탄다. 지치고 무거워진 육체와 온갖 잡투성이 세상의 상념들을 함께 지고 산을 오르는 어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벼움이리라.

기념촬영을 빼놓을 수 없다. 정상임을 알려주는 이정표 앞에서는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얼굴은 모르지만 사진 찍어주기를 부탁하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싫어하는 내색없이 미소로 답한다. 그렇게 찍은 인증샷은 월요일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산에 오른 기분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부럽다' '대단하다'는 댓글을 확인하고서 한 번 더 산 정상에 서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산 중턱에 마련된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노상 주점에 들러 하산의 아쉬움을 달랜다. 맨 몸도 오르기 힘든 중턱까지 어떻게 저런 장비를 가지고 와 장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른 처지의 여유 앞에서도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런 긴장 덕분에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막걸리를 산 속에서 맛보게 됐으니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무사한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남겨놓고 온 무엇인가가 생각나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정작 우리에게 말없이 허리와 옆구리를 내어 주면서 자신을 오르게 했던 산을 그냥 두고 온 일이다. 단풍보다 더 화려한 옷가지를 입은 사람들이 올랐다 떠나간 뒤에도 산은 아직 그대로 서 있다.

내려서서 정상을 다시 보면 수줍은 듯 붉게 타 오른 가을 산 정상에서는 하얀 얼굴을 살짝 내민 겨울이 등장하고 있다.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긴장과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찬란했던 푸른 기운을 벗고 잎 떨어지기 전의 아름다운 순간을 마지막까지 빛내 보이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갖가지 사연을 산에 묻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한 케이블방송의 교양프로그램이 인기다. 세상에서 얻은 병마와 실패까지도 기꺼이 품어주는 자연의 무한한 인정속에 사는 주인공의 삶을 보면서 적잖은 위안을 삼는다.

어디에도 마음 붙이기 힘든 암담한 갈림길의 극점에서 인간이 선택할 것은 자연뿐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무작정한 댐이나 골프장 건설, 산을 파 없애는 위험한 개발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등산인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풍구경을 다녀오는 행렬들로 전국의 고속도로가 막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에게 길을 터주고 쉼터를 제공하는 그 아름다운 산에도 나이가 있고 찬바람에 긴장하는 처연함이 있다는 것을, 나름대로의 심회를 가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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