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암흑천지가 된 것입니다. 그때 술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던 장웅이라는 장수가 자신이 눈여겨 본 궁녀를 찾아가 온 몸을 만지며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잠시 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 오른 그 궁녀는 무뢰한 자의 흔적을 남기도록 하기 위해 그 장수의 투구에 달린 금술을 떼어 장왕에게 가지고 가 장수의 무려함을 고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장왕은 신하들이 불을 켜려는 순간 행동을 중지시키고 초대된 모든 장수들에게 명령해 자신의 투구에 달려 있는 금술을 다 떼어 왕에게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모든 장수들의 투구에 금술이 사라짐으로 인해 궁녀를 희롱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장왕의 장수들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장왕이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죽음의 자리에 빠졌지만 장웅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죄인 된 자들로서 우리 주님께로부터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다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망 이후에 심판의 대상이요 저주의 대상이 바로 죄인 된 우리 인간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을 사랑의 하나님은 그냥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하셨고 대속의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입게 된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 역시 주변에 있는 잘못된 이웃, 불의한 이웃, 부정한 이웃을 정죄하고 비난하며 사는 자가 아니라 용서하고 용납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용서에 관해서 말씀하시기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할지니라"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로 은총을 입은 우리 성도들은 이웃을 무한정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강조하기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1-32)고 하셨습니다.
용서와 관용이 사라져 가는 이 시대 속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과 관용을 몸소 실천하면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성숙한 신앙인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본받아 사랑하며 사는 성도, 용서하며 사는 성도,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가슴의 소유자들이 다 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