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이어진 폭염에 밭작물들은 물을 흡족하게 대주지 못해 타들어갔다. 특히 물 관리 대비되지 않은 고추농사 농가의 안타까움은 농사아비가 아니더라도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한다.
이곳 거제도 농촌마을은 여름철 밭 작물로서 대개 고추, 콩, 그리고 참깨를 심는다. 어느 작물이나 비가 흔해도 역병에 약해지지만 수분이 모자라는 가뭄은 생장과 결실에 바로 직격탄이 되고 만다. 지난해와 같은 폭염의 더위에 사람들이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생계에 이은 작물의 고통은 바로 농가의 고통이 된다.
근래에 노인인구로 채워져 있는 자연마을의 현황은 노인 스스로 어떻게라도 땅을 심지 않고 비워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평생 살아온 땅과 작물에 대한 정서는 아무리 근력이 딸려도 이를 쉽게 버려두지 못한다. 또한 아무리 땅값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이를 변화시켜 재산변동을 꾀할 자신도 의심되기 마련이다. 노인에게 농업소득의 증가는 결코 나이에 비례하지 못한다. 더구나 대부분 소농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형태로서는 농업장비기계화의 밑천을 감당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고령화된 노인 인구의 영농현실은 비록 큰 발전은 없어도 자연과 농토에 대한 애정은 특별하다. 될 수만 있으면 손에 익은 농토를 끝까지 가꾸고 늘리어 자손들에게, 후대에 남기고 싶은 애절함이 어느 모로나 있는 것이다. 소농의 농사아비로서는 자식들이 이미 저마다 생계와 살길을 찾아서 부모 곁을 떠나 살지만 그 중에 하나쯤은 선산과 농토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꼭 노인들의 향수만은 아닐 것이다.
영농을 일구어가는 고령화 시대의 노인근력은 한계에 부딪쳐도 건강을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다. 농사만 그런 것이 아니지만 한도 끝도 없고 미룰 수도 없는 것이 농사다. 농사를 제 때에 하지 않고 거둬들이는 수확은 없다.
이런 때 농사아비는 무리를 하기 마련이다. 농가마다 각자 농사를 하는 노령화 시대 마을의 영농비화는 문자 그대로 슬픈 일이 더 많다. 농사일 무리로 움직이지 못할 형편에도 병원에 가면 의사는 우선 어지간한 아픈 데는 소염제를 써서 통증을 풀어주기도 하는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다. 진통제 효과에 의한 임시적인 치료는 근본적인 치료를 더디게 하고 때를 놓치게 한다. 노인들이 아픔의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던 농사의 무리를 얼른 조절하지 못하는 사정은 이를 사회적 시각으로 고령화 시대의 다방면의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산과 돈만 있어 될 문제도 아니다.
자연과 농토와 고령화된 영농에 부합하는 최고 정책이 있다면 무엇일까? 마음의 농토를 가꾸는 고령화 시대의 노인의 자연 수명과 건강을 지키는 영농기술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인 스스로 마음의 호르몬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은 고통 없는 인생과 근력의 노동력 재상산에 큰 도움이 된다.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은 막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은 마음이며 마음먹는 일은 아무리 아픈 몸에서도 빛과 같이 느낄 수가 있다. 빛을 생각하는 그 순간에 우리 몸의 어떤 부분에도 이 빛의 파장은 벌써 닿아 있을만큼 빠른 것이다.
이러한 빛의 파장을 믿을 때 고통이 대신할 수 없으며 나아가서 할 일을 기쁘게 해낼 수가 있다. 노인이기 때문에 더 약해지는 삶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노인 스스로 마음의 호르몬에 의한 자가충전을 깨달아야 한다. 몇 수억 배로 빠른 마음의 빛을 생각하는 마음의 호르몬을 믿는 창조적 깨달음이 곧 고령화 시대의 보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