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들국화
  • 거제신문
  • 승인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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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논설위원

화훼 가운데 가장 진화한 꽃이 국화(菊花)로 그 종류만 해도 이천종이 넘는다. 국화의 원산이 우리 땅인지 중국인지는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국 송나라 때의 국화재배가였던 유몽(劉蒙)이 쓴 국보(菊譜)에 그가 애양하는 163종 가운데 일찍이 신라로부터 전래된 품종이 있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그렇다면 왜 국화의 우리말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한다.

지금의 국화는 관상용이지만 옛날에는 우리 식생활에 쓰이던 식물이었다. 봄에는 움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고, 가을에는 꽃을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었다. 연중행사였던 화전(花煎)놀이도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였다. 가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국화가 바로 국화의 원형으로 식용으로 쓰이던 것이다. 들국화를 이용한 차나 술이 그 대표적이다.

그런데 사실 들국화는 없다. 국화과의 구절초·쑥부쟁이·개미취를 통칭해 들국화라고 부를 뿐이다. '이제껏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여! 이제는 절교다'라고 노래한 정승호 시인처럼 이 세 개의 꽃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야생화 공부는 끝났다고 할 정도로 구별이 쉽지 않다.

구절초는 꽃이 희거나 옅은 분홍색으로 줄기가 아홉 마디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잎 끝이 동글동글하면서 꽃대 하나에 꽃 하나만 피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에 많다. 쑥부쟁이는 쑥을 캐러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고 해서 쑥부쟁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슬픈 전설이 담긴 꽃이다. 대부분 보라색으로 꽃잎이 길고 날씬하며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개미취는 쑥부쟁이와 정말 구분이 어렵다. 이파리 가장자리가 굵은 톱니면 쑥부쟁이고, 물결모양의 작은 톱니면 개미취로 보면 된다. 특히 개미취는 가지 윗부분이 많이 갈라지는 게 특징이다.

서정주 시인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은 재배한 국화꽃이 아니라 야생의 국화, 바로 들국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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