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학교는 민주적인 학교문화 조성과 소통과 배려의 공동체 학교를 형성으로, 배움중심의 학습공동체를 구축하는 배움과 협력이 있는 미래형 학교를 말한다. 요지는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학생참여중심의 배움중심 수업을 실천해 그것으로 학교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지금껏 선생님들은 가르쳐 왔다. 아이들에게 내가 알고있는 지식과 교과서의 내용을 아주 열정적으로 소리쳤고 필기하고 외우고 평가하면서 가르쳐왔다.
유년시절 초·중학교 때 선생님들은 칠판 가득 중요한 내용을 판서하고 우리는 열심히 공책에 적었다. 그리고 쪽지 시험처럼 외우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지식, 문화적으로 전승돼야 할 지식을 우리에게 열심히 가르치셨다. 그리운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도 선생님들은 열심히 수업한다. 그런데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수업은 교사중심수업이란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고민하고, 같이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을 하란다.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자치회 활동으로 학급의 일을 결정하고 더불어 교사들의 문화도 민주적인 협의회체로 바꾸자 한다. 그래야만 학생도 행복하고 교사도 행복한, 즐거운 배움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상남도교육청도 열심히 관리자 및 교사 연수를 하고 있다.
학생이 행복하다면 뭘 못하겠는가? 교실 안에서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간 배움의 과정만 일어난다면, 그래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일어난다면 그게 혁신 아니겠는가? 10년 전에도 토의토론 수업, 협력수업, 프로젝트수업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는다.
왜 안 되는가? 간단하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그런 수업의 이론은 머리로 다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수업해야만 수업개선이 된다는, 그래서 배움의 과정이 일어난다고 가슴으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수업에 대해서 몸이 모르고 있다. 그러니 연수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선생님들이 초등시절에 이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배운대로 가르친다.
그런데 그게 선생님 잘못도 아니다. 동양의 교육이 2500년을 그렇게 해왔다. 그 속에서 찬란한 문명도 피웠다. 서양의 교육과 동양의 교육이 다르다. 공자의 방법과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다르지 않는가? 우리의 DNA에 공자의 교육, 그와 더불어 시작된 과거제, 그래서 모조리 외워야 했던 사서오경. 주자를 알아야 했고, 성리학을 공부해야 했다. 그런 아시아적 전통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교육에도 녹아있는 것이다. 마치 DNA처럼…. 그래서 대학입시가 최고의 교육목표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뒤집어졌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마크 주커버그와 친구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그린 등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무장된 신인류들이 등장했다. 이들에 의해서 정보통신기술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세상을 이끄는 기업인 MS·애플·페이스북·구글이 등장했다.
이들이 조직화한 세계에서 우리는 뒤쳐지면 안 된다. 천연자원도 없고 있다면 오직 사람밖에 없는 우리가 미래에 먹고 살 길이 교육 밖에 더 있는가? 그에 따른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안내하고 내재화 시킬 역량을 갖춰야 한다.
2500년의 공자의 DNA를 가지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사고력·창의성·상상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전략과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의 핵심은 토의토론 수업이다. 협력적 문제해결이다.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미래 조직의 성공 키워드는 협력하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미래의 창조성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협력에서 나온다. 이제라도 학생들이 참여하고 스스로 배우는 토의토론 수업·협력수업·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애들이 어른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토론하고 탐구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집단지성! 그렇다. 이제는 집단지성의 시대다. 우리의 미래가 이들에게 있다.
'We are smarter than me!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