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결혼식
작은 결혼식
  • 거제신문
  • 승인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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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논설위원

영조임금 때 당대 제일의 재정관이라면 호조판서 정홍순 대감이다. 후일 벼슬이 좌의정까지 오르지만 딸의 혼사 때 혼숫감이 없을 만큼 가난했다. 부인이 걱정하면 대감은 "내가 알아서 다 준비시켰으니 당신은 여식애 교육이나 잘 시키시오"하며 태평스런 말만 한다.

정작 결혼식 날 아침까지도 혼숫감은 도착하지 않았고 안달복달하는 가솔들을 보며 정대감이 한다는 소리가 "장사꾼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늦는 모양이지. 대감 체면에 소인배들과 싸울 수도 없고 하니 그냥 간소하게 예나 올립시다."

진(秦)나라 왕이 딸을 진(晋)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 혼수를 실은 수레가 끝이 없었고, 심지어 예쁜 여자 70명을 뽑아 시녀로 딸려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진나라 공자는 딸려 온 시녀 중에 한 여자를 첩으로 삼고 정작 신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진백가녀(秦佰嫁女) 이야기다.

중국 후한(後漢) 때 양속(羊續)이 남양군 태수로 있을 때였다. 태수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어느 관원이 귀한 생선을 구해 태수의 집에 가져다 놓았다. 며칠 후 그 관원은 또 다시 생선을 사들고 태수의 집을 찾아왔다. 양속이 하인에게 지난번에 가져왔던 생선을 가져 오라고 했다. 생선을 먹지 않고 나무에 매달아 놓아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관원은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한 지인이 고기를 좋아하면서 왜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았다. 만약 고기를 받았다가 벼슬이 떨어지면 정말 먹고 싶을 때 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다."

조선시대 목민관에게는 삼거(三拒)라는 불문율이 있었다. 첫째는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 둘째는 청을 들어준 다음 답례를 거절하는 것, 셋째는 재임 중 경조애사(慶弔哀事)의 부조를 일체 받지 않는 것이다. 지난 주말 조영제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장녀 결혼식에 하객들이 축의금을 내기 위해 두 줄로 20m나 늘어섰다니 공무원의 작은 결혼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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