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개(율포) 이야기
밤개(율포) 이야기
  • 거제신문
  • 승인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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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동부에 사는 팔십된 노인이 죽기 전에 강원도 금강산 구경이나 하자고 길을 나섰다.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소문난 금강산이지만 동부노인은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 반쯤 올라가다가 되돌아 내려오는데 어떤 노인이 정자에 앉아 있었다.

"금강산이 좋다고 해서 왔는데 별 구경거리가 되지 않아 돌아가려고 하는데, 혹시 어디 좋은 곳이 있으면 알려주시오" 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 노인이 "이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굴이 하나 있을 거요. 굴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 바깥에서 구경만 하시오" 하기에 가리킨 곳으로 얼마쯤 올라가니 정말 굴이 나타났다.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 왠지 더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 거기에도 한 노인이 정자에 앉아 있기에 더 좋은 구경거리가 없느냐고 묻자, 노인은 위로 더 올라가면 꽃밭이 있을 텐데 꽃밭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만 보라고 일러주었다.

시키는 대로 좀 더 올라가니 거기에 멋진 꽃밭이 있었다. 동부노인이 생각하기를 아까도 굴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듯이 꽃밭에도 들어가면 더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꽃밭 가운데 있는 정자에 열댓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동부노인은 다리도 아프고 해서 잠시 쉬어가려고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앉자마자 그 여자아이가 물구나무를 넘더니 여우로 변해 잡아먹으려고 했다. 동부노인은 내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그동안만 살려 달라고 빌었다. 여우는 그럼 봇짐을 맡겨 놓고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동부노인은 아까 꽃밭을 가르쳐 준 노인에게 달려가서

"날 좀 살려 주시오."

"허허허, 내가 당신을 살려줄 수 있다면 25명이나 되는 우리 식구들을 구여시(여우의 방언)한테 잃었겠소. 그런데 혹시 그동안 적선한 일이 있소?"
하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젠가 마을 사람들이 남생이를 잡아 불에 구워 먹으려는 것을 보고 돈을 주고 사서 살려준 기억이 나서 말했더니, 노인은 종이에 무슨 글을 써주며 강에 가서 던지라고 했다. 동부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자, 잠시 후 큰 배가 한 척 나타나더니 동부노인을 태우고 물속으로 데려갔다. 동부노인이 살려준 남생이가 용왕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용궁에는 구여시의 심부름꾼으로 구여시가 잡아먹을 사람의 명단을 가진 중이 있었다. 용왕이 중이 가진 1000장의 명단 가운데서 동부노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빼 내었다. 그것 때문에 구여시는 999명의 사람을 잡아먹고 동부노인 한 사람만 더 잡아먹으면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었는데 못하고 용왕이 내린 불벼락을 맞고 죽었다.

용왕은 동부노인에게 집에 가거든 밤나무 1000그루를 심어 숲을 만들라고 시켰다. 동부노인이 돌아와 집과 산에 밤나무를 빽빽하게 심었다.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한 구여시 넋이 호랑이 몸에 들어가 동부노인을 잡아먹으려 왔다. 그런데 나무를 다 세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나무가 많아 세는데 시간이 걸렸다.

밤나무를 세고 있으면 그 사이에 있던 잡목들이 "나도 세라. 나도 나무다" 하며 훼방을 놓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헤아린 숫자를 까먹어 다시 세야만 했다.

결국 밤나무를 다 세지 못하고 새벽이 되자 구여시 넋은 재로 변해 버렸고, 동부노인의 자손들은 그곳에 터를 잡고 잘 살았다고 한다.

이 밤나무 때문에 마을이름이 '밤개'가 됐고 한자 이름으로는 동부면 '율포(栗浦)'다.

정리 : 윤일광 논설위원
(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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