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왕국으로부터 북향 2리(里)에는 베짱이라는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날, 여느 때와 같이 개미는 자신보다 세 척이나 커 보이는 나뭇잎을 이고 있었다. 이를 본 베짱이가 "이보슈, 개미 양반. 좀 쉬다 가지 그러요? 그렇게 평생 일만 하다 죽을 거요?"하고 지껄였다. 그러자 개미가 "내 수십번도 넘게 같은 곳을 지나가는 길에 그대를 보곤 하였는데 그대는 어찌 매번 늘 노래만 부르는 것인가?"라며 되물었다.
베짱이는 기가 막혔다. 뒤따라오는 일행들의 면상(面像)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혹여 들릴세라 소심하게 내뱉는 노동의 찌듦이 베짱이의 귀에 닿았다. 베짱이는 끊이질 않는 줄을 보며 "쯧쯧"을 연발했다. 그는 할 말이 있었던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거기 맨 앞의 선두주자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보시오"라고 외쳤다.
순간 일행들은 수군거렸다. 이에 선두주자로 나섰던 개미는 발길을 돌려 베짱이 앞으로 다가왔으며 뒤따라오던 이들에게는 계속해서 행진을 외쳤다. 개미가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큰소리를 해대는 게요?"라고 말했고 이에 베짱이는 "그대가 누구인지는 내 알 바 아니오. 다만 이웃으로서 명심토록 전해줄 말이 있소"라고 답했다.
개미가 "어허, 감히 나한테 들려줄 조언이 있다? 그보다 우선 나에게 예의를 갖추도록 하시오"라고 말하자 베짱이는 "시간이 생명이라고 여기시는 분께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받는 것엔 한가로우신가 봅니다. 허허"라고 답했다. 개미는 황급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매일 여기에 있단 말이오? 그렇게 유흥을 즐기니 또 식량은 어찌 구한단 말이오까?" 이에 베짱이는 "난 그런 속물 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단 한번뿐인 인생인데 그런 것에만 집착하면 무슨 낙으로 살란 말이오"라고 말했고 개미는 "속물이라. 그대여, 착각하지 말게"라고 했다.
"개미 양반이여, 그대는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부지런함의 대명사로 손꼽혔지만 실상 그러하지 못하다는 걸 왜 그들은 모르나이까? 하기야 그럴만도 하겠소.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의 언행은 불순하니…."
이후 개미의 소식은 뜸해졌다. 이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개미 양반의 형체를 보았다는 여러 소문이 돌고 돌았다.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간다는 등 가지가지 했지만 베짱이는 그가 그래도 여전히 왕국으로 되돌아가 생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