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아버지의 땅
  • 거제신문
  • 승인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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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시인/아동문학가/언론인

땅을 판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땅을 판다.
내 아버지가 평생을 판땅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금
아버지에게는 한 평의 땅도 없다.
익숙하던 손놀림은 이제 주름 잡혔고
밤마다 가슴에 괭이질만 하고 있다.
거부하던 땅껍질을 헤치면서 드러나던
그 부드러운 속살을 만지고 싶어 한다.
 
아버지는 땅을 팔 때가 제일 진지했었다.

·시 읽기: 이 시는 2014년도 '제6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대상' 수상작 중 한 편이다. 시적 화자는 농부의 아들이다. 농부에게 땅은 목숨과도 같은 재산이고, 일터이고, 삶터이다. 농부인 아버지는 1~3행에서 뿐만 아니라, 마지막 행에서도 "땅을 판다." 동사 '파다'를 원뜻으로 삼았지만, 동사 '파다'와 '팔다'의 언어유희로 읽히기도 한다. 땅파기는 농부의 일상이다. 이 일에 열중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지금/ 아버지에게는 한 평의 땅도 없다." 땅을 판(매매)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 때문에 땅을 팔았다는 복선이기도 하다.
 시적 화자는 회고적 시점의 진술을 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땅을 판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땅을 판다." 평생 동안 판 "땅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것을 궁금해 한다. 땅파기에 익숙하던 아버지의 손놀림은 이제 녹이 쓸어 손등에도 주름이 잡혔다. 아버지는 밤마다 가슴에 괭이질만 한다. 단단하던 땅껍질 속의 "부드러운 속살을 만지고 싶어 한다." 시적 화자는 아버지가 "땅을 팔 때가 제일 진지했었다."라고 진술한다. 이처럼 농부가 진지하게 땅파기를 하듯, 우리도 진지한 삶을 살자.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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