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판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땅을 판다.
내 아버지가 평생을 판땅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금
아버지에게는 한 평의 땅도 없다.
익숙하던 손놀림은 이제 주름 잡혔고
밤마다 가슴에 괭이질만 하고 있다.
거부하던 땅껍질을 헤치면서 드러나던
그 부드러운 속살을 만지고 싶어 한다.
아버지는 땅을 팔 때가 제일 진지했었다.
·시 읽기: 이 시는 2014년도 '제6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대상' 수상작 중 한 편이다. 시적 화자는 농부의 아들이다. 농부에게 땅은 목숨과도 같은 재산이고, 일터이고, 삶터이다. 농부인 아버지는 1~3행에서 뿐만 아니라, 마지막 행에서도 "땅을 판다." 동사 '파다'를 원뜻으로 삼았지만, 동사 '파다'와 '팔다'의 언어유희로 읽히기도 한다. 땅파기는 농부의 일상이다. 이 일에 열중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지금/ 아버지에게는 한 평의 땅도 없다." 땅을 판(매매)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 때문에 땅을 팔았다는 복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