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정군자 놋그릇 찾기
하루는 정군자의 동생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어젯밤에 도둑이 들어 아끼던 놋그릇을 훔쳐가 버렸다고 하소연을 했다. 놋그릇은 거제에서 쉽게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비싼 탓에 제사 때에나 꺼내 쓸 만큼 아주 귀하게 여기던 물건이었다.
"형님, 어느 놈이 내가 그렇게 아끼는 놋그릇을 훔쳐갔는지 좀 가르쳐 주소."
"잃어버렸으면 그걸로 끝이지 뭘 찾겠다고 그러나, 그냥 잊어버리게나."
"형님은 모르시는 게 없는데 동생이 이렇게 부탁을 하면 걱정이라도 해 주어야지 찾지 말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소?"
동생은 퉁명스럽게 말하는 형님의 말에 빈정 상해서 한마디하고는 담배를 피우려고 긴 담뱃대를 끄집어내었다. 그러자 정군자가 동생의 담뱃대를 낚아채더니 그냥 두 동강이를 내어 버렸다.
"무슨 담뱃대가 이렇게도 기냐. 이제부터는 이렇게 작게 만들어서 담배를 피워라."
형님의 말씀이라 거역도 못하고 집을 나왔지만 형님이 여간 원망스럽지 않았다. 앉아서도 천리를 보고 하룻 밤에도 몇 천리를 다녀올 수 있다는 신묘한 능력을 가졌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형님이다. 마음만 먹으면 동생이 잃어버린 놋그릇 정도야 쉽게 찾아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놋그릇을 찾아주기는커녕 담뱃대마저 두 동강 내버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형님이 부러뜨린 담뱃대를 손질하여 짧게 만들었다. 명진에서 시장을 보려면 거제읍내장까지 내려와야 했다. 망태기를 짊어지고 아침 일찍 장보러 내려온 동생은 이것저것 물건을 사고 나서 오랜만에 장에 왔으니 국밥에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담배 생각이 나서 피우려고 보니 부싯돌을 가져오지 않았다.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불을 얻으려 했지만 그날따라 담배 피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때가 삼동이라 방에 군불을 땔 때였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가까운 곳에 아궁이가 보였다. 군불을 피웠다면 분명 불씨가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재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를 찾아냈다.
담뱃대를 넣어 불을 붙이려고 하니 담뱃대가 짧아 아궁이에 바짝 붙어 자세를 낮추어야만 했다. 엎드려서 담뱃불을 붙이다가 보니 부뚜막 아래 작은 공간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 보자기로 싼 그릇 같은 것이 보였다. 동생은 그게 뭔가 하고 보자기를 열어보니 며칠 전에 도둑맞은 바로 그 놋그릇이 거기 있었다. 동생은 그 놋그릇을 망태기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놋그릇을 찾은 것이 너무 기뻐 얼른 형님에게 찾아갔다.
"형님, 놋그릇을 찾았습니다. 형님은 참으로 용하십니다. 이 담뱃대가 길었으면 놋그릇을 찾지 못했을 텐데 형님이 부러뜨려 짧게 만든 탓에 엎드려서 불을 붙이다 보니 놋그릇이 보인 겁니다. 형님은 내가 잃어버린 놋그릇을 찾게 하려고 일부러 부러뜨렸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형님을 원망했으니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찾게 해준 것이 아니라 네가 찾을 운이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하여튼 고맙습니다. 놋그릇을 훔쳐간 놈을 관가에 고발하러 가야겠습니다."
"됐네, 이 사람아. 잃어버렸던 것을 찾으면 그만이지 원수질 일은 하지 말게."
정군자는 자기가 한 일도 상대의 운이나 상대가 잘해서 한 것으로 돌렸고, 작은 것 하나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산 거제의 군자였다.
정리 : 윤일광 논설위원(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