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무
겨울 소나무
  • 거제신문
  • 승인 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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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 김계수 거제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이는 날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이원수 작사·정세문 작곡 '겨울나무' 中.

어른이 되어 다시 불러보는 동요가 새로운 의미를 주는 때가 있다. 눈 쌓인 높은 산, 살을 에는 바람을 혼자 감당하는 소나무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한 길을 걷고 있는 의지와 기상을 듣는다. 세상을 미혹할만한 자태나 모양새가 아니더라도, 산을 산답게, 산이 산처럼 되도록 지켜나가는 용기와 의지가 고맙고 소중해 보인다. 어느 누구도 날 칭찬하거나 돕거나 지지하지 않더라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겨울 소나무 같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

논어 '학이편'에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라는 구절이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뜻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군자로 살 필요도 없거니와 쉽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군자로 살아갈 여유와 환경이 사라진 세상이기는 해도 남의 '관심'이나 '인정' 만큼은 많은 돈을 벌게 하고 먹고 사는 방편이 된 세상이 되었다. 진실보다는 얼마만큼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느냐가 삶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일이건 사업이건 남이 알아주지 못하면 실패하고 마는 냉혹한 시대다.

얼마 전 국내 제과회사의 한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슈퍼마켓을 수소문하고 다닐 정도로 많이 팔렸다. 진열하자마자 동이 나고 원래 가격의 몇 배를 주고서라도 구입하는 진풍경이 벌여졌다. 국내산 아카시아 벌꿀이 0.01% 함유된 한낱 과자에 불과한 것이지만, 과자를 먹어 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남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관심 속에 동승해 세상에 뒤쳐져 살고 있지 않다는 안도의 쾌감을 즐긴다.

아직 그 과자를 구입해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보여 준 맹목적인 관심과 제품 마케팅의 성공스토리 속에 이미 함께 묶여진 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서 엉뚱하고도 참 슬픈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대중적인 관심의 한 가운데 자신을 옮겨 놓는 것. 이것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고 다른 사람과, 이 시대에 모든 위기와 분열, 갈등을 해결하거나 적어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하는 말을 모르면 대화가 어렵듯이 그 대열에 끼이는 것만으로도 엄격하고 냉혹한 경쟁의 굴레 속에서 잠시 추운 바람을 이겨내는 방법이 된 셈이다.

제각각의 목소리로 각각의 영역에서 이익추구에만 바쁜 외롭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한낱 과자를 먹어보는 일이거나 갑질을 해대는 대기업 임원의 뒷이야기와 연예인의 비화에 같은 분노를 뱉어내는 일이라니, 스스로가 참 허전하고 쓸쓸하다.

세상도 그러하거니, 겨울같이 추운 시대에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와 헐한 관심에서 벗어나 참으로 소중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 줄 것 같은 그런 사람, 겨울바람을 맞고 서서 그나마 산이 푸르도록 지키고 있는 소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 사람이 꼭 군자일 필요는 없다. 우리 조직에 나이 많은 사람, 동네에서, 가정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만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곁사람'이 그랬으면 더욱 좋겠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이 되겠다.

같은 시대를 사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그런 사람 입에서 나온다면 억지 칭찬을 하지 않아도, 일부러 관심 주는 척 하지 않아도 참 따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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