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아랫마을에 사는 석순이는 지지리도 가난해 이집 저집 구걸하면서 먹고 살았다. 어느 하루는 귀목정(사곡에서 거제로 넘어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마을)을 지나가게 됐다.
마을 정자에서 두 노인은 바둑을 두고 한 노인은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형색이 남루한 석순이가 지나가자 구경하고 있던 노인이 "자넨, 아직 자네 복을 타지 못했구먼" 하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석순이가 "내 복이라고요? 어떻게 하면 내 복을 탈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저기 계룡산 쪽으로 쭉 올라가 보게나" 하고 일러 주었다.
석순이는 이제 나에게도 복이 오는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산을 향해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는데 고래등 같은 기와집 안에서 곡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갔더니 양귀비보다 예쁜 부인이 소복을 입고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천석꾼의 재산을 가진 사람인데도 어찌된 일인지 서방만 얻으면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내 팔자가 왜 그런지 당신이 복 타러 가거든 옥황상제한테 좀 알아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또 한참을 올라가는데 길 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큰 구렁이가 길을 막고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렁이가 "복 타러 가는 줄 아는데, 복을 주는 사람을 만나거든 내 억울한 사정도 좀 알아봐주면 길을 비켜주겠다"고 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다른 뱀들은 나보다 못해도 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나는 어째서 용이 되지 못하는지 그걸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꼭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을 하자 뱀이 길을 비켜 주었다.
드디어 석순이는 옥황상제가 계신 집에 도착했다. 큰절을 하고 "거제 읍내 사는 아무개가 복 타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자 옥황상제가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자네 복이 아직 그대로 있군" 하면서 석순이 몫의 복을 꺼내주었다.
석순이는 올라올 때 과부와 구렁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옥황상제에게 물었더니 "구렁이 그놈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승천하려면 여의주가 하나만 필요한데 그놈은 여의주를 두 개나 가지고 있으니 등천을 하지 못한다" 고 가르쳐줬다.
"그럼 과부는 왜 서방만 얻으면 사흘도 넘기지 못하고 죽느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여의주를 가진 사람을 서방으로 얻으면 된다"고 했다. 석순이가 돌아오는데 구렁이가 또 길을 막고 누워 자기가 등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너는 여의주를 두 개나 갖고 있어 그 욕심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 하고 말하니까 구렁이가 '칵' 하면서 여의주 하나를 토해 냈다. 그 순간 구렁이는 용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석순이는 구렁이가 토해 놓은 여의주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내려오는데 날이 어둑해졌다. 지난번에 만났던 과부가 석순이가 올 때까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날도 저물고 해서 그 과부집에서 하룻밤 자기 위해 들어갔다.
"내가 과부가 되지 않는 방법을 알아 왔습니까?" 하고 물었다.
"여의주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합디다" 하고 일러 주었다.
"아이고, 나는 평생 과부신세는 못 면하겠군요. 여의주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구하나요?" 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실망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석순이는 사랑에 누워 잠을 자는데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사랑방이 훤하게 밝았다. 이상하게 여긴 과부가 사랑으로 가보니 석순이의 주머니에서 빛이 났다. 과부는 석순이를 깨워 주머니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빛이 나느냐고 물었다. 석순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뱀이 뱉어 놓았던 여의주였다.
"바로 당신이 내 서방이 될 사람입니다" 하면서 두 사람은 그날로 부부가 되었다. 석순이는 천석꾼 부자에 잘 생긴 부인을 얻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그게 바로 석순이의 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