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강원도 금강산, 경상도 지리산, 그리고 거제도 노자산에 호랑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노자산 호랑이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가축을 잡아먹거나 사람을 해치기까지 했다.
지금부터 약 300년쯤 전의 일이다.
노자산 아랫마을에 참기름 장수가 살았다. 마침 어느 해에는 흉년이 들어 참기름이 팔리지 않아 자꾸 쌓여만 갔다. 참기름을 오래 둘 수 없어 키우고 있던 작고 예쁜 강아지에게 참기름으로 볶아 만든 음식을 먹이고, 털에도 참기름을 잔뜩 발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들었다. 참기름이 듬뿍 든 음식을 먹고 털에 참기름을 자꾸 바르다보니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미끄러웠다.
어느 날 참기름 장수는 이 강아지로 호랑이를 한꺼번에 많이 잡을 수 있는 꾀를 생각해 냈다. 참기름 장수는 장날 시장에 나가 단단하고 야문 줄을 한 서른 발 넘게 넉넉하게 사가지고 와 저녁 무렵 강아지와 줄을 짊어지고 노자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간 참기름 장수는 긴 줄의 끝에 강아지를 단단하게 묶고 또 다른 한쪽 끝은 커다란 소나무에 매어 두고, 호랑이가 잘 다닐만한 길목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참기름 장수는 어제 강아지를 놓아둔 곳으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 줄에는 호랑이가 주렁주렁 엉켜져 있었다. 어젯밤에 먹을 것을 찾아 호랑이 떼가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오고 있는데 마침 산등성이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는 강아지가 먹음직스러워 보이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냉큼 삼켰다.
참기름을 바른 강아지라 호랑이의 이빨에 씹힐 사이도 없이 목 안으로 미끄러져 넘어갔다. 호랑이 뱃속에서도 강아지는 창자 속을 미끄럼 타듯이 해 순식간에 똥구멍으로 빠져 나왔다. 그러자 다음 호랑이가 웬 떡이냐 하며 또 냉큼 주워 먹으니 그 또한 잠시 후 똥구멍으로 나왔다. 이렇게 차례차례 호랑이 열두 마리가 한 줄에 엮이게 됐고 호랑이 몸을 열두 번이나 통과한 강아지였지만 참기름 장수가 산에 왔을 때에도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참기름 장수는 이제 부자가 됐다고 흐뭇해하고 있을 때, 마침 노자산에 호랑이 사냥을 나왔던 포수들과 마주쳤다. 우락부락한 게 마치 산적과 같이 생긴 다섯 명의 포수가 자기들이 잡을 호랑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다 내 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참기름 장수는 혼자서는 이들을 도저히 당할 수 없어 모두 내 놓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한꺼번에 호랑이를 열두 마리나 잡았다고 마을사람들에게 자랑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니까 내가 호랑이 열두 마리를 잡았다는 증거로 호랑이 귀를 조금씩 베어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했다. 호랑이 열두 마리를 그냥 빼앗게 된 포수들은 그 정도 소원이야 못 들어줄 게 있느냐며 귀를 조금씩 베어 참기름 장수에게 줬다.
며칠 후 참기름 장수는 귀를 싸들고 서울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그 당시 호랑이를 잡으면 남대문 시장에서 사고 팔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포수들이 호랑이를 팔려고 남대문 시장에 나와 있었다. 이를 본 참기름장수는 포도청으로 가서 내가 잡은 호랑이를 빼앗아간 놈들이 시장에 있으니 잡아 호랑이를 돌려받게 해달라고 신고했다. 포도대장이 시장에 나와 저 호랑이가 참기름 장수 것이라는 무슨 증거라도 있느냐고 묻자 가지고 간 호랑이 귀 조각을 내 놓았다. 포도대장이 호랑이 귀에 맞춰 보니 틀림없이 꼭 맞았다.
포도대장이 부하들을 시켜 포수들을 꽁꽁 묶어 포도청으로 압송하고 남대문 시장에 내 놓았던 호랑이 열두 마리를 되돌려 받았다. 강아지에 기름을 발라 호랑이를 잡은 것이나, 잡은 호랑이를 빼앗길 때 베어낸 귀 조각으로 다시 찾게 된 참기름 장수의 기지가 엿보이는 이야기다.
정리: 윤일광 詩人(자료: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