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6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누군가의 추천이었는지, 누나들이 읽고 책상 위에 둔 책이었는지 모르지만(간혹 나는 누나들이 읽고 둔 시집과 서정적인 책을 읽었다) 책표지에 동양애 같진 않아 보이는 자그마한 소년이 왕자님 옷을 입고 아주 작은 지구위에 서있는 예쁜 책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할 일이 없어 한 장을 넘기고 두 장을 넘기고 그렇게 그 책을 다 읽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 대학시절 교육학 수업 중 교수님께서 그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어오라는 리포트를 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서점에서 그 옛날에 읽었던 책을 찾았다.
그런데 그 책의 표지는 초등학교 때 보았던 표지와 거의 비슷했다. 초등학교 때의 추억들이 그 책을 통해 기억의 저편에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근래 나는 컴퓨터 자판연습 프로그램에서 “어린왕자”의 서두부분을 또 읽게 되었다.
「“보아 구렁이는 먹이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여섯 달 동안 잠을 자면서 그것을 소화시킨다” 나는 그래서 밀림 속에서의 모험에 대해 한참 생각해 보고 난 끝에 색연필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내 생애 첫 번째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의 그림 제 1호였다. 그것은 이런 그림이었다.
나는 그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하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구렁이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 나의 그림 제 2호는 이러했다. 어른들은 속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하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들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계산 그리고 문법 쪽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적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나는 그림을 참으로 못 그린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실기 시험은 늘 C점수였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그렸건만 점수가 항상 C였기에 나에게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이라는 설명의 기회도 없이 영락없이 C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C는 최하위 점수였다.
아마도 당시 선생님들께서는 ‘어린왕자’를 읽어 보시지 못했던가 보다
이제 내 나이 서른여섯이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작가의 그림을 보니 그건 모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이 어른이 옛날 어린이로 있던 시절에 기꺼이 바치고 싶다.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다」라고 말한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그 옛날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분명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었으니까….
나는 지금 두 아이에게 항상 설명을 요구한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그리고 나는 나의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그 설명이 미흡하면 다그친다.
나 역시 윗사람으로부터 설명을 강요당한다. 우리 어른들은 이 놈의 설명 때문에 작가가 여섯 살 적에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했듯이 우리의 자리를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 서글픈 어린이였던 어른들이여! 나는 찬찬히 ‘어린왕자’를 다시 펼쳐 본다. 또 변했을지 모를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