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사랑
도깨비의 사랑
  • 거제신문
  • 승인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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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딴 집에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름난 노름꾼으로 집안일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거기다가 한 번 집을 나가면 노름에 미쳐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딸의 어머니는 남편 대신 집을 꾸려나가려고 하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딸에게 하는 말이 "뒷동산 도깨비라도 좋다. 너희 아버지 같지않은 남자라면 누구에게든 시집보내고 싶다"고 하더니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죽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가 집을 비우면 먹을 것이 제대로 없어 자꾸 야위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다.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바깥을 내다보니 어떤 총각이 쌀을 한 가마니 지고 와서는 마당에 풀어놓고 "내 밥 좀 지어주소" 하고 말했다. 딸은 그렇잖아도 저녁을 먹지못한 터라 쌀가마니에서 두 사람이 먹을 정도의 쌀을 퍼내 밥을 지어 나눠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총각은 아무 곳이나 누워 자고는 새벽녘이 되면 집을 나갔다.

총각이 매일밤 쌀을 한 가마니씩 지고 오면 두 사람이 먹을 양만 들어내고 나머지 쌀은 모두 딸의 차지였다. 그렇게 되니 딸의 살림이 부쩍부쩍 늘어만 갔다. 아버지가 노름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 집에 오니 다른 때와 다르게 광에는 쌀이 그득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딸에게 묻자 딸은 자초지중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그 총각이 틀림없이 도깨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도깨비가 자기 딸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기회에 한몫 단단히 잡을 궁리를 했다.

그래서 딸에게 그 총각이 오면 올 때마다 쌀을 한 가마니씩 가져오면 귀찮은 일이니까 집에 커다란 창고를 짓고 한꺼번에 쌀가마를 채워놓으면 좋지 않으냐고 말하게 했다. 정말 총각은 순식간에 창고를 짓고 곡식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딸에게 말하기를 총각에게 돌밭을 일궈 논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 했다. 총각은 딸에게 올 때마다 논을 한마지기씩 일궈 냈다.

이제 이만하면 부자가 됐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도깨비를 쫓아버리고 많은 곡식과 논밭을 차지하기 위해 딸에게 "오늘밤 총각이 오거든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무서운지 물어 보거라"고 시켰다.

저녁이 되어 총각이 왔을 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물어 보았다.

"당신은 무엇이 제일 무서워요?"
"나는 세상에서 무서운 게 하나도 없소."

딸은 밤새 총각을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무엇을 무서워 하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딸은 포기하고 잠을 자려고 치마를 벗었는데 마침 안에 입은 하얀 속치마가 드러났다. 그때 총각이 갑자기 기겁을 하면서 몸을 벌벌 떨었다.

"나는 흰색을 제일 무서워 해요."

총각은 흰 속치마를 벗어 던져버리라고 애원을 했다. 다음날 딸은 아버지에게 총각이 흰색을 제일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마을에서 흰말을 빌려와 대문에 매어두고 흰 사발을 깨어 집 주위에 흩어 놓았다. 그리고 곳곳에 흰 보자기를 걸어 놓았다.

밤이 되자 총각이 딸을 찾아왔지만 딸의 집은 모두 흰색으로 둘러져 있어 들어오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이것 좀 치워 주세요" 하며 매일 밤이면 찾아와 울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 총각은 딸의 집을 떠나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총각이 떠난 다음날 아침, 밥을 지으려고 광으로 쌀을 가지려 간 딸은 깜짝 놀랐다. 광속에 있던 쌀은 모두 모래로 변해 있었고, 그동안 총각이 일궈놓은 논밭은 모두 돌밭으로 변해 버렸다.  

정리 : 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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