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한산도가 거제도에 속해 있었는데 그 한산도에는 거제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만큼 아주 잘 사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나 욕심이 많은지 남을 도우는 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느날 그 부잣집에 어떤 중(僧)이 동냥을 갔다. 그런데 부자는 동냥은커녕 내미는 쪽박마저 박살을 내고 쫓아냈다. 괘씸하게 생각한 중이 부자를 혼내주기 위해 유명한 지관(地官) 행세를 하며 며칠 후 그 부잣집을 다시 찾았다.
"나는 묘 자리를 잘 보는 사람인데 당신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은 조상의 음덕임에는 틀림이 없소. 그런데 그 묏자리가 어느 것이지 알고나 있소?" 하고 물었다.
부자는 더듬거리며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중은 "어느 조상이 보살펴 줘서 부자가 됐는지 모른다면 그 조상 어른이 얼마나 섭섭하겠소? 만일에 그 조상께서 이 사실을 알면 아마 주었던 음복을 모두 다 거둬 가실지 모르지오" 하고 넌지시 겁을 주자 부자는 놀라 좋은 음식과 술로 대접하고 돈도 넉넉하게 내어 놓으며 당장 어느 묏자리인지 봐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럽시다." 이리해 중은 다음 날 부자와 함께 한산도에 있는 조상 묘들을 둘러보고 나서 거제로 넘어왔다. 지금의 남부면 홍포와 여차 사이의 고지(串)에 있는 5대조 선조의 묘를 보러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묘는 훌륭하게 잘 가꿔진 것이 아니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분상도 거의 훼손돼 평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풍수에 능했던 중이 보기에 대번에 부자의 음복이 여기서 나오는 명당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어른이 왜 여기에 묻혔소?" 하고 물었더니, 부자가 하는 말이 옛날에 큰 흉년이 들어 한산도에서는 먹을 게 없어 거제까지 칡을 캐러 왔는데 한산도만 흉년이 아니라 거제에도 흉년이라 온 산에 칡이라는 칡은 모두 다 캐가고 먹을 게 없어 여기서 굶어 죽었다고 했다. 죽은 사람을 한산도까지 모시고 가는 것도 힘들어 지금 여기에 흙만 덮어 무덤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중이 말하기를 "만약 이 묘를 여기 그대로 놔두면 당신 생전에 그 많은 살림이 다 망할 뿐 아니라 대(代)가 끊어질 자리이니 이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이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무엇이든 좋다고 하면 좋아 보이지만, 나쁘다고 하면 왠지 마음에 걸리고 마음이 쓰이는 법인지라, 그렇잖아도 벌초할 때마다 이 무덤이 마음에 걸렸는데 유명한 지관이라는 사람이 이장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한시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로 이장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이리해 다음 날 한산도에서 일꾼들을 데리고 와서 묘를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를 파는 사람은 몰랐지만 다른 곳에서 보니 묘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더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덤 안에서 까마귀 세 마리가 훌훌 날아 나오더니 바다 건너 앞에 있는 섬에 가서 한 마리씩 앉더라고 했다.
그 섬이 지금의 소병대도인데, 이쪽 사람들은 '까마귀섬'이라 부른다. 섬은 여러 개의 돌섬으로 이뤄졌지만 까마귀 세 마리의 전설 때문에 소병대도는 섬이 세 개라고 우긴다.
그 후에 한산도 부자는 그 많았던 살림이 다 망했고,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묘가 있던 곳을 '까마귀개' 또는 까마귀 '오(烏)'자를 쓰서 '오포(烏浦)'라 부르는데, 까마귀개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집이 살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터만 남아 있다.
정리 : 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