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듣고·향기 맡은 1석3조…영예의 향파상 정병준씨의 '홍화'에게 돌아가

예로부터 난(蘭)은 군자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소재로 벚꽃·국화·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리었다. 아름다움과 향기가 귀하게 여겨지며, 번잡하지 않고 곧게 뻗은 잎의 기세와 단촐하면서도 고고한 자태가 선비의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난의 향기는 멀리서 맡으나 가까이서 맡으나 농도가 일정하다. 바로 이점이 군자의 성품과 같다.
난은 또한 매우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뿌리가 90% 가까이 썩어 들어가도 잎은 멀쩡하다. 다른 식물 같으면 벌써 병들어 시들었을 텐데 난은 자기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속은 타 들어가는데도 얼굴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부러질지언정 꼿꼿하다. 바로 이 점이 또한 군자와 같다.
난은 깨끗한 것만 먹고 자란다. 화분에다 기름진 거름을 섞으면 죽고 만다. 생명력이 강하면서도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는 성품이 역시 군자와 같다. 그래서 선비들은 난초의 향기와 모습을 사랑한 것이리라. '난사군자혜사대부(蘭似君子蕙似大夫)'라는 말이 있다. 난은 덕 높은 군자와 같고 혜초는 귀한 대부와 같다는 말이다. 또 '사란사형(似蘭斯馨)하고 여송지성(如松之盛)이라'는 구절도 있다. '난초처럼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무성하다'라며 난초와 소나무를 군자에 비유했다.
보는 이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홀로 향기를 내는 난초는 군자의 깊고 넓은 내면을 표현한다. 이처럼 군자를 논하는 자리에 난(蘭)은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
청초하고 고귀한 선비정신을 갖고 있는 난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제22회 거제난대전이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신현농협 수양점 하나로마트 2층 홀에서 열렸다.
거제난연합회(회장 김승호) 주최로 열린 이번 난대전은 6개 단체에서 222점의 작품을 출품해 4개 부문 82명이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난대전이 열린 공간은 은은한 난 향기로 가득했다. 중투를 비롯한 복륜, 서호반의 엽예품과 적화·홍화 복색화 등 다양한 품종의 색화가 선보여 전시장을 찾은 회원뿐만 아니라 많은 애란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2회를 이어온 저력에 맞게 전시회장 한쪽에서는 거제난협회 고문들과 애란인을 자청하는 관람객들에 의해 즉석 강의가 이뤄져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듣는 행운까지 더해졌다.
거제난연합회 김창민 고문은 "거제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 젊은 층이 많고, 조선업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심신이 고달픈 이들이 많다"면서 "삶에 휴식과 힐링을 줄 수 있는 난초 키우기는 삶의 강약이 맞아떨어져서 삶의 질을 올려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고문은 "난을 키우는 자체만으로도 나만의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고 이 안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서 "하나씩 디딤돌을 얹어가며 탑을 쌓아 완성으로 나아가듯이 난을 키우는 것도 그 만의 독특한 기쁨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전시작을 유심히 돌아보던 염지열씨(53·고현동)는 "주말이 되면 난을 캐러 산을 찾는다. 좋은 난을 찾으면 좋고 아니어도 운동이 되어서 좋다. 한 주동안 쌓인 직장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난처럼 키우기 쉬운 식물도 없다. 환기에 신경 쓰고 열흘에 한번 정도 수분을 공급시켜주면 된다"고 말했다.
염씨는 또 "난 세계에 입문한지 27년이 지났다"며 "난은 나에게 아내와 같은 존재, 인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고 애찬론을 펼쳤다.
거제난연합회 박종명 고문은 "동양란을 키우고 있는데, 중국란은 한국란에 비해 향기가 상당히 좋다"면서 "하지만 한국란은 원예적 가치가 뛰어나다"면서 동양란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향파(香坡) 김기용을 기리며…

1915년 하청면 사환마을에서 출생한 향파 선생은 17세에 난에 입문해 56년간 난 연구에 평생을 바치다 74세인 1988년에 작고했다. 향파 선생은 평생 동안 향리에만 묻혀 한국란의 가치를 일궈내고 난 재배이론을 정립했다. 또 난분과 식재를 개발하는 등 한결같은 애란생활을 통해 난인의 길을 몸소 보여 한국 난계에서 '사표(師表)'로 추앙받고 있다.
1998년 전국 애란인의 성금으로 지금의 고현동 매립지 녹지공간에 애란비를 세웠다. 2009년에 향파기념사업회가 창립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창민 고문은 "거제난연합회 뿐 아니라 전국에서 존경받고 칭송받는 분들 중의 한명이 향파 김기용 선생"이라면서 "향파 선생의 애란정신을 기리고 업적을 고양하기 위해 거제난대전에서는 대상을 향파상이라 지칭하고 시상을 한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동양화 재배와 감상'은 1981년 향파 선생이 지으신 책으로 난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면서 "출간 된지 35년이 지난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난의 깊이라든지, 사람과의 관계 등을 좀 더 알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고문은 또 "호남지방의 경우 전시장의 난을 구경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30분 정도 줄을 서야 들어가 볼 수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세히 구경을 하지 못하고 밀려 나가는 형국이었다"면서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다. 우리는 향파 김기용의 후손으로 어느 지역을 가도 인정을 받는 후학들이지만 막상 거제에서는 무료로 전시를 해도 찾아 주지를 않는다"며 진한 아쉬움을 보였다.
난(蘭)과 인사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난초의 기본은 소심(素心)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소심의 꽃을 보면 녹색과 흰색 이외에 일체에 잡색이 없는 것으로 이것을 난초의 기본으로 두고 있다. 두화소심은 작은 콩만한 하얀 꽃이 앉아 유혹을 하는 모습이 빼어난 난이다. 복륜이라 칭하는 난의 경우 잎의 가장자리 색이 노란색이나 흰색을 띄며 중투는 잎 중간의 색이 다르다. 조
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동양란 감상의 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2015년 새봄, 난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