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山芳山)은 글자 그대로 산이 꽃과 같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에는 임진란 때 옥(玉)씨가 피난했다고 전하는 옥굴이 있고 가뭄이 들어 애타게 비를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냈던 무지개터, 다섯가지 흙이 나온다는 오색터, 하늘나라 선녀들이 봄에 꽃구경 와서 춤을 추고 놀았다는 선녀바위를 비롯해 염소굴·베틀굴·신선대·왜구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낭떠러지에서 몸을 날려 죽음을 택했던 절부암 등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명소가 한두 곳이 아니다.
산방산 8부 능선쯤 되는 곳에 석굴이 하나 있다. 이 굴을 삼신굴 또는 석굴암이라고도 불렀다. 서쪽을 향한 이 석굴은 석양이 질 때면 햇빛이 동굴 안으로 들어 왔다. 경주 토함산 석굴은 동쪽으로 향해 있어 동해의 일출 때 빛이 석굴로 들어오는 것과는 반대다.
조선 문종임금 때 지우라는 중이 이 좁은 삼신굴에 들어와 도를 닦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불경을 외며 기도를 했는지 산방산 동물들도 그 앞에서는 조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노루 한 마리가 석굴 앞에까지 와서 지우스님이 불경을 외우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스님의 곁에 와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런 일이 9년 동안 되풀이 됐다. 스님과 노루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 산방산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석양빛을 받아 붉게 불타고 있었다. 노루는 지우스님을 찾아와서 함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도 떠나가지 않고 토굴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래도 지우스님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토굴을 빙빙 돌던 노루는 다음 날 아침 토굴 앞에서 죽어 있었다. 지우스님은 정이 들었던 노루를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줬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노란색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공손하게 절하며 하는 말이 "저는 어제 새벽에 죽은 노루입니다. 스님의 불경과 법문을 많이 들은 공덕으로 이 산 아랫마을 김아무개 집 아들로 태어날 터인데 왼쪽 겨드랑이 밑에 노루털로 된 둥근 점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면 저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 스님은 마을로 내려가 김아무개 집을 찾았다. 그런데 꿈의 예언대로 집앞 대문에는 아들을 낳았을 때 치는 금줄이 걸려 있었다. 스님은 김아무개 주인을 찾아 혹시 태어난 아이의 겨드랑 밑에 노루털로 된 점이 없더냐고 물었다.
김아무개는 그걸 스님이 어찌 아느냐고 놀랐다. 지우스님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초지중 말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원묘'라고 지어주면서 "이 아이는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가진 아이라 일곱 살이 되는 해에 나에게 보내 상좌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다.
김아무개 부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인도환생했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세월이 지나 원묘가 일곱 살이 됐을 때 지우스님에게 보내졌고 원묘는 머리가 영특해 지우스님이 가르쳐 주는 불경을 잘 배워 16세에 오계를 받았고 대승경전을 두루 읽어 나중에 대법사가 됐다.
정리: 윤일광(詩人)ㆍ(자료: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