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심도, 마음을 담은 섬
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막 지나간 지난 14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장승포로 향했다. 동백섬으로 이름난 지심도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막 지나간 지난 14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장승포로 향했다. 동백섬으로 이름난 지심도를 향한 발걸음이었다.몇일 계속된 꽃샘추위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 것이라는 생각은 단 30분 만에 산산조각 났다. 차에서 내려 도착한 지심도 선착장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아…어쩌지, 예매도 안 하고 왔는데.'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30분.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오후 2시30분에 출항하는 배만 남아있었다. "사람들에게 밟혀 배가 가라앉는 것 아이가,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이 가노." 매표소 이곳저곳에서 놀라움 반, 탄성 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민도 잠시, 마지막 배편도 곧 매진된다는 소식에 서둘러 표를 산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배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가까운 김해에서부터 서울, 광주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캐나다 캘거리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아, 지심도는 더 이상 거제의 작은 섬이 아니구나.' 왠지 모를 뿌듯함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4시간 동안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창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과 바다를 가르는 유람선의 새하얀 포말이 나를 반겼다. 세월의 무게로 패인 가파른 절벽을 가진 이름 모를 섬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설렜다.
배에서 내려 지심도에 발을 내딛었다. 고개 들어 본 지심도의 첫인상에 다들 넋을 잃은 모양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눈으로는 부족해 마음으로 섬을 담고자 하는 이들로 앞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지심도에 도착하면 별다른 안내자가 필요 없다. 스마트폰에 지심도를 치고 앱을 설치하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세상이다.
지심도 오솔길의 첫 길목에서 동백과 인사를 했다. 봄의 전령인 매화가 흐드러지게 웃고, 천리향이 유혹하듯 향기를 내뿜으니 반하지 않을 이가 없을 것 같았다. 며칠째 이어진 추위 탓인지 만발한 동백꽃을 만날 수는 없었다. 한 관광객이 말했다.
"어쩌랴, 자연이 나에겐 허락하지 않은 것을."
동백터널을 찾아 나선 곳에서 발견한 하트길. 나뭇잎과 나뭇잎이 겹치면서 만들어낸 이 길을 찾아내고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이 톤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의 길잡이가 됐다. 덕분에 수없이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덤으로 들었다.
손깍지를 끼고 걷고 있는 다정한 연인의 모습에서부터 동백터널 속 아이의 모습을 담고 싶은 아버지의 손짓까지. 자연도 좋지만 그 속에 사람이 있어서 더 좋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곳에 역사의 아픔이 있었다
"야, 대나무다."
"대나무이긴 한데, '신우대'라고 하죠. 예전 전쟁 때 화살로 사용 된 겁니다."
탄약고를 향하며 대나무밭을 보고 소리치던 나를 향해 중년의 한 관광객이 설명을 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신우대가 무성한 그곳에 아픔이 자리한 터가 있다. 지름 5미터 정도의 원형으로 된 포대 터. 1936년 경술국치 이후 주민들이 강제 이주를 하게 됐고, 그 이후 일본 요새로서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지심도에 주둔했다.
당시 해안방어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포는 360도 회전을 할 수 있었고 방향은 부산과 대마도를 향하게 설치됐다. 포 옆에는 탄약을 준비해 놓는 탄약고도 함께 만들어져 있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탄약고의 모습은 여전히 견고했다. 관광이라는 단어만 생각하고 도착한 이 섬에서 아픈 역사를 만나 진지해 진다. 탄약고 안을 걸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여행이 조금은 무거워짐을 느꼈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글자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어린아이에게 설명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역사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서는 안 될 과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와 단호한 반성은 새로운 미래로의 출발점일 것이리라.

다시 삶의 터전으로
파도소리 벗삼아 즐기는 걷기여행은 쉼과 여유라는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었다. 어깨를 매만지는 봄바람과 울창한 원시림이 가져다주는 아늑함에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바쁜 현대인에게 주어진 꿀 맛 같은 휴식의 시간이 지심도에 존재했고, 몸과 마음을 감싸 안는 힐링의 공간이 그곳에 있었다.
박정훈씨(51·김해시)는 "항상 오고 싶은 곳이 지심도였다"면서 "동백꽃을 찍고 싶어서 왔는데 시기가 좀 이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박씨는 "섬에 2시간 정도 머물 수 있는데 둘레길을 돌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시계를 자꾸 봐야 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면서도 "지심도 자체는 너무도 좋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연과 함께한 꿈결 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장승포항으로 향할 배를 기다렸다. 지심도로 올 땐 장승포를 가차 없이 버리고 배에 서둘러 올랐건만, 지금 이 순간에는 먼저 지심도를 떠나려 줄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에 나도 몰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심도 선착장에서 2주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정건씨(24·옥포동)는 "3월 들어 하루 평균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입도해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며 "얼마 전에도 배 출항시간 때문에 시비가 있었다. 좋은 기분으로 왔다가 좋은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지심도는 지금
천혜의 자원인 지심도도 인간이 발굴하고 갈고 닦다보니 여기저기 사람냄새가 묻어났다.
좁은 산책로는 민박집 4륜 오토바이의 전용도로가 된지 오래였다. 쉼없이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산책로를 오르내렸다. 민박집이 한두 집도 아니고 지심도를 찾는 이들도 한두 명이 아니니 앞으로는 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청춘도 나이든 어르신도 4륜 오토바이에 짐짝처럼 실려 목적지로 향했다. 민박객에게 주어지는 특권쯤 되는 모양이었다.
동백꽃이 없다며 투덜대던 한 관광객은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열심히 주워 모았다. 사진을 찍는 배경으로 쓰며 기뻐하더니 한 아름 비닐봉투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지심도에서 먹은 동동주 한 잔, 파전 한 접시가 좁은 유람선에서 악취가 돼 돌아왔다. 나에게 단 것이 남에게도 단 것이 되면 좋으련만.
김선숙씨(69·서울)는 "10명의 친구들이 새벽 5시30분 서울에서 출발해 거제에 왔다"면서 "곧바로 통영으로 이동해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은 통영을 구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제에서 볼 곳은 지심도 밖에 없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를 찾은 이들에게 지갑을 열게 할 제대로 된 관광품 판매소 한 곳도 없는 장승포의 모습이 서글프게 다가 왔다. 돈 쓸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이다. 쓰게 만들어 줘야 마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