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묘스님이 산방산(山芳山)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였다. 유달리도 추웠던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스님의 토굴 앞에 한 여인이 찾아왔다.
"스님, 소녀는 지아비를 찾아 나섰다가 그만 길을 잃고 온 산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날씨는 너무 춥고 마을까지 내려가려면 길도 멀고 하니 하룻밤만 여기서 자고가게 해 주십시오."
여인은 추위에 떨며 말했다.
"보아하니 사정은 딱하오만 보다시피 토굴은 좁고 또 기도하는 곳이라 여인을 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고 딱 잘라 거절했다.
"스님이 기도하는 데는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겠습니다. 지쳐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여인이 들어올 수 없는 청정한 곳입니다. 사정은 안됐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냉정하게 돌아앉더니 염주를 굴리며 눈을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인이 통사정을 했지만 스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열심히 불경만 외우고 있었다. 스님은 여인을 절대로 토굴 안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여보세요, 스님."
여인의 날카로운 소리에 그제야 스님은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절세가인, 하늘의 선녀라도 찾아온 듯 정말 예쁘기 그지없는 미인이었다. 스님은 갑자기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듯 눈을 감고 다시 나무아미타불만 외웠다.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로 인간을 구제할 줄 모르니 불법을 깨우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고 앙칼지게 따졌다.
그때 원묘스님은 "아차, 미처 그걸 몰랐구나" 하며 바깥에서 떨고 있는 여인을 토굴 속으로 들어오게 했다. 여인은 산을 헤맨 탓인지 토굴에 들어오자 마자 지쳐 잠이 들었다. 좁은 토굴이라 비스듬하게 누운 여인의 몸과 스님의 몸이 닿았다. 스님도 남자인지라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를 맡자 정신이 자꾸만 흐려만 갔다.
원묘 스님에게는 이 밤이 너무나 길었다. 육욕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불경을 외웠지만 정신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때 잠들었던 여인이 배를 움켜쥐고 뒹굴면서
"스님, 갑자기 배가 아픈 것을 보니 아마 해산을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제 배를 좀 쓸어 주십시오."
그 말에 스님은 앞이 캄캄했다. 배를 쓸어 달라니, 거기에 아기를 받아야 할 처지니 이제 도를 닦기란 다 글렀다고 생각되었다.
"스님은 사람이 다 죽어 가는데 어찌 관세음보살만 외웁니까? 빨리 나가서 목욕물을 데우고 아기 받을 준비를 하십시오."
스님은 참으로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여인을 토굴 안으로 들여놓지 않아야 했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예쁜 여자에 홀려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스님은 목욕물을 데워 함지박에 담아와 아기를 받아 주고 해산밥도 지워 여인에게 주었다. 밥을 먹은 여인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먼동이 트고 햇살이 먼 산을 비추고 있었다. 하룻밤에 일어난 일이 마치 천년의 세월이라도 된 듯이 스님도 지쳐 있었다. 이제 도를 닦는 일도 글렀고 부처님 앞에 마지막 예불이나 들이고 떠나야겠다고 생각으로 부처 앞에 기도를 드리는 순간 부처님의 몸에 서 향긋한 향기가 번져 나왔다. 돌아보니 잠들었던 여인은 어느새 오색구름 위에 앉아 있고 아기는 연꽃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호명보살이다. 너는 머지않아 보살의 도를 얻을 것이다. 나는 너를 시험해 보았다" 하며 꽃구름을 타고 가면서 꽃비를 뿌렸다.
산주위와 마을에 꽃비가 내려 온통 꽃마을이 되었다. 그 후로 이 산을 산방산이라 불렀고 그 아래 마을을 산방마을이라 불렀다.
정리 : 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