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 거제신문
  • 승인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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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수 칼럼위원

▲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상징이다. 예수님을 섬기는 교회임을 나타내기 위해 건물에 십자가를 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낸다.

신앙의 자유가 없는 지역의 성도들은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어 주며 믿음을 격려한다고 한다. 십자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수신앙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런데 고대세계에서는 십자가가 어떤 단체의 상징물로 삼을만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가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었다.

십자가는 당시의 '야만인들'에 의해 고안된 처형방식이다. 로마인이 이 처형방법을 채택했을 때도 그들은 중범죄인들에게만 십자가를 사용했다. 그것도 로마 시민이 아닌 노예나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만 이 형벌을 가했던 것이다.

키케로는 십자가를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라고 하면서 "로마 시민을 결박하는 것은 범죄이고 그에게 매질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고, 그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이며, 로마시민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그렇게 끔찍한 행동을 묘사할만한 적절한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십자가'라는 단어는 로마인들의 생각과 눈과 귀에서까지도 멀리 사라져야 하며 십자가를 상상하는 것조차 로마시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혐오했고 끔찍스러워 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에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라는 율법을 적용시켰다. 그들은 메시야가 나무에 달려서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서 죽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따라서 로마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요, 인간의 구세주인 그리스도가 십자가위에서 그의 삶을 마쳤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좋은 냉소거리가 됐다. 바울은 십자가의 메시지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로마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한다.

죄인으로 정죄 당해서 가장 수치스러운 처형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을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경배하는 것을 미련하다고 하며,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인데 이를 경배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하지만,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 했다.

과연 바울이 어리석고 미련해서 그런 것인가? 율법을 몰라서 그런가? 바울은 당시 산헤드린 회원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사사받은 석학 중의 석학이었다. 로마인들이 그토록 어리석게 여기고, 유대인들이 미련하게 생각하는 십자가를 바울은 어떻게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선포할 수 있는가?

십자가의 사건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십자가 위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됐다. 그래서 교회는 처음부터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십자가가 비록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요 신앙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자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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